단네브로게 침몰선 (해양고고학, 코펜하겐 전투, 유물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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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단네브로게 침몰선 (해양고고학, 코펜하겐 전투, 유물 발굴)

by trip.chong 2026.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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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년 동안 코펜하겐 항구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군함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801년 코펜하겐 해전에서 침몰한 덴마크 군함 단네브로게(Dannebrog)가 발견된 것입니다.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난파선 발견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숨진 사람들의 흔적이 그대로 물속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침몰선

코펜하겐 해전, 역사책 밖으로 나오다

1801년 4월 2일 아침, 영국 해군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이 이끄는 함대 39척이 코펜하겐 항구를 향해 포문을 열었습니다.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군은 올페르트 피셔(Olfert Fischer) 사령관의 지휘 아래 맞섰지만, 4시간의 교전 끝에 패배했습니다. 단네브로게는 덴마크 방어선의 중심에 있었고, 넬슨 함대의 두 척으로부터 집중 포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화재와 폭발로 침몰했고, 바로 그날 휴전이 선언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들을 때 저는 연도와 사건을 외우기보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내용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이 소식을 접하고도 같은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숫자로만 알고 있던 전사자와 부상자가 갑자기 실제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단네브로게에서만 56명이 전사하고 4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코펜하겐 전투 전체로 보면 덴마크군은 약 370명이 전사하고 200명 이상이 지금도 실종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전투는 덴마크 역사책에 오래전부터 기록되어 왔지만, 고고학적 현장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출처: 덴마크 바이킹 선박 박물관). 수백 년 동안 문헌 안에만 머물던 전투가 비로소 땅 아래에서, 아니 바다 아래에서 실물로 확인된 셈입니다.

수중 발굴 현장, 15미터 아래의 어둠 속에서

이번 발굴은 덴마크 바이킹 선박 박물관의 해양 고고학자들이 주도했습니다. 여기서 해양 고고학(maritime archaeology)이란 수중 환경에 잠긴 선박, 항구 구조물, 유물 등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고고학의 한 분야입니다. 육상 발굴과 달리 시야 확보와 압력 문제가 겹쳐 작업 난이도가 훨씬 높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수심 15미터 아래,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 환경에서 난파선 잔해를 확인했습니다. 현장에서는 포탄과 산탄(grapeshot)이 흩어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산탄이란 하나의 포에서 작은 쇳덩이 여러 개를 동시에 발사하는 방식으로, 인원 살상에 특화된 고대 해전 무기입니다. 대포 두 문도 함께 발굴되었으며, 선체 크기는 남아 있는 역사 도면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이번 발굴에서 확인된 주요 유물과 증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포탄과 산탄 다수 (전투 교전의 물적 증거)
  • 대포 2문
  • 선원들의 신발, 옷 조각, 점토 파이프, 제복 휘장
  • 하악골(아래턱뼈)과 갈비뼈를 포함한 인간 유해
  • 실종 기록과 일치하는 승무원 추정 유해 1구

제가 직접 발굴 현장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박물관에서 유물을 볼 때 설명을 꼼꼼히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뉴스를 읽으면서 그 감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신발 한 켤레, 파이프 하나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전투 당일 그 배에 올라타 있던 누군가의 물건이라는 사실이, 역사를 전혀 다른 온도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리네트홀름 개발 계획과 보존의 딜레마

이번 발굴은 사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사전 조사 성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코펜하겐 항구에는 리네트홀름(Lynetteholmen)이라는 271 에이커 규모의 인공 반도 조성 계획이 진행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코펜하겐을 보호하기 위한 기반 시설 개발 계획이지만, 환경과 문화유산에 미칠 영향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중 문화유산 보존(underwater cultural heritage preservation)이란 바다나 호수 아래 잠긴 역사적 구조물과 유물을 보호하는 국제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유네스코는 2001년 수중 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하여 각국이 개발보다 보존을 우선시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UNESCO). 이번 코펜하겐 사례는 바로 그 협약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개발과 보존의 충돌은 역사 유물을 다루는 현장에서 늘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전시관이나 발굴 보고서를 볼 때 "이 유물은 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문구를 종종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발견이 아닌 소멸로 이어질 뻔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단네브로게의 경우도 리네트홀름 계획이 없었다면 조사 자체가 시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개발이 아이러니하게도 발견의 계기가 된 셈입니다.

유해와 유물이 전하는 것, 역사를 대하는 태도

발굴팀은 선원들의 일용품뿐 아니라 인간 유해도 수습했습니다. 하악골과 갈비뼈를 비롯한 여러 뼈가 확인되었고, 실종 기록에 남아 있는 승무원 중 한 명의 유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고학자 오토 울둠(Otto Uldum)은 아직 분류와 분석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모든 유물을 인양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서 골학적 분석(osteological analysis)이란 발굴된 뼈를 통해 성별, 연령, 건강 상태, 사망 원인 등을 추정하는 전문적인 연구 방법을 말합니다. 이 분석이 완료되면 225년 동안 이름 없이 실종자로 기록되어 있던 사람이 비로소 역사 기록 안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며 단순히 '옛날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제가 그동안 얼마나 피상적으로 역사를 바라봤는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실제로 전투 당일 그 배 위에 있었던 사람들, 그 무게를 유물 하나에서 느끼는 것과 연도를 외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코펜하겐 항구에서는 2020년부터 광범위한 해양 조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15세기 톱니바퀴선도 발견되었습니다. 단네브로게는 그 조사의 일환으로 세상에 나왔고, 앞으로 분석 결과가 공개될수록 코펜하겐 전투에 대한 이해가 더 구체적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이번 발견은 단순히 '오래된 배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25년 동안 이름 없이 바다 아래 잠들어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온 것입니다. 앞으로 역사 자료나 유물을 접할 때, 저는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상황을 먼저 떠올려보려 합니다. 그렇게 바라볼 때 역사가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걸, 이번 뉴스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관심이 생겼다면 덴마크 바이킹 선박 박물관의 공식 발표를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4/02/science/warship-copenhagen-discovered-danish-nelson-scli-in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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