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9 제곱마일 면적의 바닷속에서 난파선 124척이 발견되었습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저는 잠깐 멈칫했습니다. 어릴 때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 하나를 줍고 "이건 어디서 왔을까?" 하고 혼자 상상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호기심이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알헤시라스 만
유럽 최남단과 아프리카 북서쪽 끝 사이에 위치한 지브롤터 해협. 그 해협 동쪽 끝에 알헤시라스 만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대서양을 오가는 유조선의 기항지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이 만은 고대 카르타고 문명부터 로마 시대, 중세, 근대,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수천 년의 해상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곳입니다.
스페인 카디스 대학교 연구팀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 만 일대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총 151개의 수중 유적지를 확인했고, 그 가운데 124곳이 난파선 유적으로 밝혀졌습니다. 2019년 이전까지 이 해역에서 알려진 수중 고고학 유적지는 단 네 곳뿐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번 조사가 얼마나 획기적인 결과를 냈는지 짐작이 갑니다(출처: CNN).
저는 여행을 다닐 때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는 걸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는 유적지에서 느끼는 감동도 크지만, 이번 뉴스를 보며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역사는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바다 위를 오가는 배 아래,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그대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5세기경의 난파선으로, 당시 스페인 남부 도시 카디스에서 생산된 가룸(garum)을 싣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가룸이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쓰인 생선 발효 소스로, 오늘날의 어간장과 유사한 조미료입니다. 이 단 하나의 유물이 기원전 5세기의 교역 경로와 식문화까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점이 수중 고고학의 매력입니다.

음향측심기와 자력계,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기술
그렇다면 연구팀은 어떻게 이 많은 난파선을 찾아냈을까요? 바닷속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인데, 저도 처음에는 그냥 잠수해서 찾는 건가 싶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정교한 방식이 쓰였습니다.
연구팀이 주로 활용한 장비는 다중빔 음향측심기(multibeam echosounder)와 자력계(magnetometer)입니다. 다중빔 음향측심기란 음파를 해저 바닥에 쏘아 반사되는 신호를 분석해 해저 지형을 3차원으로 재현하는 장비입니다. 쉽게 말해 초음파로 바다 밑 지형의 지도를 그리는 장치입니다. 자력계란 물체가 발산하는 자기장의 이상 변화를 감지하는 장비로, 금속 성분이 포함된 유물이나 난파선 잔해가 주변보다 강하거나 약한 자기 신호를 내뿜는 점을 이용합니다. 이 두 장비로 수상한 지점을 먼저 추려낸 뒤, 연구자들이 직접 잠수해 디지털 모델링으로 유적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조사로 확인된 주요 시대별 난파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원전 5세기 포에니(카르타고) 시대 선박 —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유적
- 로마 시대 교역선 — 지중해 광역 무역망의 흔적
- 중세 이베리아 반도 관문 시대의 선박 유적
-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관련 근대 전함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해군이 운용한 마이알레(Maiale) 잔해
마이알레(Maiale)란 이탈리아어로 '돼지'를 뜻하는 단어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 해군이 운용한 소형 유인 어뢰를 가리킵니다. 조종사가 탑승한 채 적 함선에 접근해 폭발물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으며, 지브롤터 해협에서 영국 함대를 공격하는 데 실전 투입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 장비의 잔해가 실제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기후 변화 역시 이번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해 해류와 만의 퇴적물 이동 패턴이 바뀌면서 오랫동안 모래 밑에 묻혀 있던 난파선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를 단순한 재앙으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참 복잡하게 다가왔습니다. 과거의 유적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드러난 유적이 해류와 대형 선박의 활동에 의해 다시 훼손될 위험도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바다는 기록하고, 우리는 해독한다
지브롤터 해협이 가진 지리적 특성은 현재의 호르무즈 해협과 자주 비교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오늘날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병목 지점이듯,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수천 년 동안 모든 해상 세력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출처: UNESCO 수중문화유산 협약 관련 자료). 이 지점을 통과하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 사이의 충돌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흔적들이 해저에 켜켜이 쌓였던 것입니다.
제가 이번 연구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연구팀의 솔직한 태도였습니다. 현재까지 조사된 깊이는 약 10미터에 불과하고, 알헤시라스 만의 실제 최대 수심은 약 400미터에 달합니다. 연구팀은 깊은 수심 어딘가에 구석기시대의 해안선이 잠겨 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금까지 발견한 것은 전체의 극히 일부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겸손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수중 고고학(underwater archaeology)이란 해저, 호수 바닥, 강바닥 등 물속에 잠긴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고고학의 한 분야입니다. 육상 발굴과 달리 조사 환경 자체가 까다롭고 장비 비용도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구가 더딘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번 알헤시라스 만 프로젝트처럼 지구물리학적 탐사 기법과 디지털 모델링을 결합한 방식은 수중 고고학의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다는 묵묵히 기록합니다. 포에니 시대의 상인도, 나폴레옹 전쟁의 군인도, 제2차 세계 대전의 잠수 요원도 모두 이 해협을 지나갔고, 그 흔적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기록을 조심스럽게 해독하는 것이고, 연구팀이 강조하듯 발견한 유적을 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76%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셈입니다. 지중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다음에 관련 논문이나 뉴스가 나왔을 때 한 번쯤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4/22/science/shipwrecks-algeciras-gibraltar-intl-sc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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