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내전 (집단분열, 순찰행동, 전쟁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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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내전 (집단분열, 순찰행동, 전쟁종식)

by trip.chong 2026.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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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전쟁이 인간만의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종교, 이념, 민족 같은 복잡한 개념 없이는 조직적인 폭력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의 침팬지 200마리짜리 공동체가 두 파벌로 쪼개져 서로를 죽이고 있다는 소식은, 제가 가진 그 전제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집단분열: 조용해진 숲에서 시작된 균열

2015년 6월 24일, 응고고 침팬지 프로젝트(Ngogo Chimpanzee Project)의 공동 책임자 아론 샌델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응고고 침팬지 프로젝트란 1995년부터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를 장기 관찰해 온 현장 연구 프로그램으로, 20년 이상 축적된 데이터를 보유한 세계적인 영장류 연구 거점입니다. 그날 숲 저편에서 낯선 침팬지 무리가 나타났을 때, 평소라면 반가운 울음소리와 등 토닥이기로 반겼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돌연 서로를 낯선 개체 대하듯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일은 아니지만, 이 장면은 제 경험 속에서 묘하게 겹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오래 어울리던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을 피하기 시작했던 그 순간이요. 처음엔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그게 결국 두 그룹이 완전히 갈라지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샌델도 그날을 "양극화의 씨앗"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그 단어 선택이 굉장히 정확하다고 느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분열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응고고 집단은 전성기에 200마리가 넘는 개체가 한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는 야생 침팬지 집단 중 기록상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합니다. 먹이 자원이 풍부한 보호 구역이라는 환경 덕분에 대집단 유지가 가능했고, 분열 가능성은 낮게 점쳐졌습니다. 연구진이 제시한 분열 배경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14년 원인 불명의 침팬지 다수 사망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
  • 2015년 알파 메일(alpha male), 즉 집단 내 최고 서열 수컷의 교체
  • 2017년 호흡기 전염병 발생으로 인한 집단 내 유대감 약화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집단 응집력이 임계점 이하로 떨어졌고, 결국 영역 기반으로 서부와 중부 두 집단이 굳어졌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분석입니다.

침팬지
침팬지

순찰행동: 숫자로 확인한 침팬지 전쟁의 실체

2018년부터 2024년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서부 집단의 공격성이 얼마나 조직적인지 드러납니다. 서부 집단은 4개월 동안 최대 15회의 순찰(patrol)을 실시했습니다. 여기서 순찰이란 침팬지 수컷들이 집단적으로 이동하며 자신들의 영역 경계를 점검하고 외부 집단과의 충돌에 대비하는 행동을 말하며, 이는 영장류 연구에서 집단 간 갈등 수위를 측정하는 핵심 지표로 쓰입니다.

이 기간 서부 집단은 매년 중부 집단에서 성체 침팬지 평균 1마리, 새끼 침팬지 2마리를 죽였습니다. 2019년에 목격된 공격은 샌델이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례로, 서부 침팬지들이 나무 위에서 먹이를 먹던 중부 집단 구성원들을 기습한 뒤 33세 수컷 바시(Basi)를 집중 공격했습니다. 바시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동물의 공격이 즉흥적이거나 먹이 경쟁에서 비롯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건 사전에 무리를 모으고, 이동 경로를 정하고, 상대를 선택해 제압하는 형태였습니다. 침팬지가 보여주는 집단 간 전쟁(intergroup conflict)의 패턴이 인간 집단의 그것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연구진의 주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까지의 피해를 수치로 보면, 중부 집단에서 성체 7마리와 새끼 17마리가 사망했으며, 추가로 14마리가 실종 상태입니다. 연구 결과는 2025년 4월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되었습니다(출처: Science). 사이언스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행하는 세계 최상위 학술지로, 게재 기준이 극히 까다롭습니다.

영국 요크대학교의 비교심리학자 케이티 슬로컴은 이번 연구에 대해 "수십 년의 장기 데이터를 통해 기록된 이 사례는 집단 간 갈등 연구에서 매우 드문 자산"이라고 평가했으며, 대규모 집단일수록 구성원 간 관계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출처: CNN Science). 제 경험상, 인원이 많아질수록 작은 감정 충돌이 잘 해소되지 않고 쌓이는 경향이 있는데, 200마리 규모의 집단이라면 그 누적 피로가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전쟁종식: 세 가지 시나리오와 우리가 배울 것

샌델 연구팀이 제시한 종전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중부 집단이 방어 체계를 재정비해 공격 빈도 자체를 줄이는 방향. 둘째,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1970년대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관찰한 '4년 전쟁(Four Year War)'처럼 강자가 약자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향. 여기서 4년 전쟁이란 곰베 침팬지 집단이 두 파벌로 나뉜 뒤 한 집단이 상대 구성원을 전멸시키기까지 벌인 분쟁으로, 침팬지에서 최초로 기록된 내전 사례입니다. 셋째, 샌델 본인도 "극히 희박해 보인다"라고 표현한 집단 재통합의 가능성입니다.

저는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연구자 스스로 단서를 달면서도 "침팬지가 어떤 일을 하든 놀라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동물들에 대한 깊은 존중과 동시에 한계를 인정하는 연구자의 솔직함이 느껴졌습니다.

사회적 유대(social bond)는 집단이 유지되는 가장 근본적인 메커니즘입니다. 여기서 사회적 유대란 개체들 사이에 형성된 반복적인 상호작용과 신뢰 관계의 총체로, 이것이 약해질 때 집단은 외부 위협보다 내부 균열에 더 취약해집니다. 침팬지에게도, 인간에게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결국 이번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갈등은 종교도, 이념도, 국경도 없는 침팬지 세계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전쟁에서 문화적 표식이 원인인지, 아니면 관계 붕괴가 먼저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 느꼈던 그 상실감을, 침팬지 연구자들도 바시를 잃은 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를 지키는 작은 노력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막을 수 있는지, 침팬지의 숲이 조용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4/20/science/chimpanzee-civil-war-ngogo-u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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