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라이징 스타 동굴에서 발굴된 호모 날레디 유골 20구가 전부 여성으로 확인됐습니다. 저도 이 결과를 접했을 때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을 정도였습니다. 뇌 용량이 침팬지 수준에 불과한 고인류가 성별로 구분된 장례 의식을 치렀을 수 있다는 가설,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과학이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순간, 그게 왜 이 분야에 자꾸 눈이 가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여성화석만 20구 — 이게 말이 되는 숫자인가
201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호모 날레디(Homo naledi)는 발견 당시부터 고인류학계를 뒤집어 놓은 종입니다. 디날레디 챔버로 불리는 동굴 깊숙한 곳에서 수십 개체 분량의 화석이 한꺼번에 나왔고, 연구진은 이것이 우연한 집적이 아니라 의도적인 매장의 결과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당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설마 저 뇌 크기로 장례를 치렀겠어?' 하고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과학 저널 셀(Cell)에 발표된 연구는 그 의문에 전혀 다른 층위의 질문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코펜하겐 대학교 글로브 연구소의 분자 과학자 팔레사 마두페 연구팀이 치아 법랑질 샘플 23개를 분석한 결과, 유효한 샘플 20개 전부에서 남성 표지자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20구 모두 여성이라는 결론입니다.
연구에 사용된 기술은 고생물단백질학(paleoproteomics)입니다. 여기서 고생물단백질학이란 화석에 남아 있는 고대 단백질을 분석해 생물의 특성이나 계통 관계를 파악하는 학문으로, DNA가 보존되기 어려운 오래된 화석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기술로 연구팀은 아멜로게닌-Y(AMELY)라는 단백질을 찾았습니다. 아멜로게닌-Y란 Y 염색체에만 연관된 단백질로, 이것이 검출되면 해당 개체가 수컷이라는 뜻입니다. 20개 샘플 어디에서도 이 단백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 분석 대상: 치아 법랑질 샘플 23개 중 유효한 20개
- 검출 시도 단백질: 아멜로게닌-Y (Y 염색체 연관 남성 표지자)
- 결과: 20개 전 샘플에서 남성 표지자 미검출 → 전원 여성으로 판정
- 호모 날레디 유골 추정 연대: 약 33만 5천 년 ~ 24만 1천 년 전
장례의식인가, 우연인가 — 학자들이 충돌하는 지점
발굴을 이끈 고인류학자 리 버거는 이 결과가 성별로 구분된 장례 의식의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호모 날레디가 여성 구성원만을 특정 방식으로 매장하는 의례적 관습을 가졌다는 해석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뇌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단순한 존재로 치부해 왔는데, 성별을 구분해서 장례를 치렀다면 그 인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반면 호주 그리피스 대학교의 마이클 페트라글리아 교수는 이러한 해석에 신중한 입장입니다. 그는 호모 날레디가 의도적 매장이나 암각화 제작을 했다는 주장 전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성별이 구분된 매장지의 첫 번째 사례라는 주장은 "과장된 표현"이라고 그는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다만 단백질 분석 결과 자체, 즉 20구가 여성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페트라글리아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뇌 크기가 작은 호미닌은 영장류처럼 암컷 위주의 소규모 무리를 지어 특정 구역에서 먹이를 찾는 행동 패턴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침팬지에서도 암컷만으로 구성된 먹이 활동 집단이 관찰된 바 있고, 바위 은신처나 동굴 입구를 피난처로 이용하는 사례도 영장류학자들이 기록해 두었습니다. 저 역시 이 설명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버거의 반론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성별 분리된 생활 방식 탓이라면, 발굴된 여러 명의 어린아이 중에 남자아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것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을 백만 분의 1로 봤습니다.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출처: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고인류학자 라이언 맥레이도 "이것이 동성 집단의 집합이라 해도, 해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고 언급했습니다.
고생물단백질학이 열어주는 가능성과 한계
제가 평소 인류 진화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는데, 기술이 발전할수록 화석이 말해주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뼈의 생김새로 성별을 추정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치아 법랑질에 남아 있는 단백질 흔적으로 성별을 판별해 냈습니다. 고생물단백질학이 오래된 화석 연구의 문을 얼마나 넓혀 놓았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물론 이 기술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연구팀 스스로도 한 가지 가능성을 논문에서 언급했습니다. 아멜로게닌-Y 유전자 자체가 돌연변이나 삭제로 인해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이형성이란 같은 종 내에서 수컷과 암컷이 크기, 형태 등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디날레디 챔버 화석들은 성체임에도 이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버거는 이것을 돌이켜보면 암컷이라는 신호였다고 했고, 저도 그 해석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개의 독립된 연구소에서 동일한 데이터를 각각 두 번씩 분석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코펜하겐 대학교 글로브 연구소(출처: University of Copenhagen GLOBE Institute)는 고생물단백질학 분야를 개척한 기관으로, 이 분야에서 200만 년 전 화석에까지 동일한 기법을 적용한 실적이 있습니다. 이중 검증이라는 절차가 없었다면 학계에서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분야는 결과 하나가 나올 때마다 기존 학설이 수정되거나 뒤집히는 일이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구를 쓰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고인류가 점차 장례 의식, 상징 행위, 공동체 생활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이번 여성 화석 발견도 그 연장선에서 보면, 지금 당장 답이 안 나와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 고생물단백질학은 DNA 보존이 어려운 오래된 화석에도 적용 가능한 분석 기법
- 아멜로게닌-Y 단백질 미검출 = 여성 판정이지만, 유전자 결실 가능성도 배제 불가
- 성적 이형성 부재가 전원 여성이라는 결론과 정합하는 추가 단서
- 두 기관 이중 분석으로 내부 오류 가능성 최소화
제가 이 연구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문장은 라이언 맥레이의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시신이 어디 묻혔는지는 알지만,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른다." 화석은 장소를 알려주지만 맥락을 다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게 이 분야의 매력이자 한계입니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려 하기보다, 앞으로 더 많은 발굴과 분석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호모 날레디가 왜 여성만 그 동굴에 남겨졌는지, 수컷은 어디 있는지, 이것이 정말 의례의 흔적인지 — 이 질문들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고생물단백질학이나 호모 날레디 관련 후속 연구를 추적해 보시길 권합니다.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6/24/science/homo-naledi-fossils-same-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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