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문어 화석 (백악기 포식자, 디지털 화석 채굴, 두족류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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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거대 문어 화석 (백악기 포식자, 디지털 화석 채굴, 두족류 생태)

by trip.chong 2026.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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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에서 문어가 유리병뚜껑을 혼자 열어내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냥 바닷속 생물 중 하나겠거니 했는데, 그 영리한 눈빛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그런데 최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를 접하고 나서, 그 소름이 다시 돋았습니다. 1억 년 전 바다에는 길이 최대 19미터에 달하는 거대 문어가 실제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백악기 바다의 숨겨진 포식자, 나나이모테우티스

제가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 중 하나가 화석은 뼈나 껍데기처럼 단단한 조직만 남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어는 몸 대부분이 부드러운 연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석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바로 두족류(Cephalopoda)의 턱, 즉 부리 화석이었습니다. 여기서 두족류란 문어, 오징어, 앵무조개처럼 머리에 발이 달린 연체동물 분류군을 가리키는데, 이 부리 부분만큼은 단단한 키틴질로 이루어져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보존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이 분석한 생물은 나나이모테우티스(Nanaimoteuthis)라는 학명의 멸종 두족류입니다. 몸의 길이는 7미터에서 최대 19미터까지 추정되며, 이는 현존하는 대왕오징어와 비교해도 상당한 크기입니다. 특히 이 생물은 머리 부분에 노 모양의 지느러미를 가진 지느러미문어류 중 과학 기록상 가장 이른 시기에 등장한 종 중 하나로 분류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육지를 누비던 백악기에, 바닷속에서는 거의 6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문어가 헤엄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동안 백악기 해양 생태계를 떠올리면 거대한 해양 파충류나 초대형 상어만 머릿속에 그려졌는데, 무척추동물인 문어가 그 자리를 나눠 가졌을 수 있다는 점이 꽤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본과 캐나다 밴쿠버 섬에서 발견된 기존 턱 화석 15개를 재분석함
  • 백악기 퇴적암에서 새롭게 발굴한 턱 화석 12개를 추가 확보
  • 화석 표면에서 단단한 먹이를 부수며 생긴 심한 마모 흔적 발견
  • 마모 패턴의 비대칭성에서 지능적 행동 가능성을 추론

디지털 화석 채굴이 바꾼 고생물학의 시야

이번 연구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사실 거대 문어 자체보다도 그 화석을 찾아낸 방식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연삭 단층 촬영(Grinding Tomography)이라는 기술과 인공지능 모델을 함께 활용해 화석을 발굴했습니다. 여기서 연삭 단층 촬영이란 암석 시료를 매우 얇게 층층이 갈아내면서 각 단면을 고해상도로 촬영한 뒤, 이를 3D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돌 속에 묻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화석을 디지털로 꺼내는 작업입니다.

연구를 이끈 홋카이도 대학의 야스히로 이바 부교수는 이 방법을 "디지털 화석 채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단순히 삽과 브러시로 흙을 걷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암석 내부의 데이터 자체를 분석해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접근인 셈입니다. 제가 직접 이 기술을 접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이 가능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생물학(Paleontology)의 연구 방법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여기서 고생물학이란 화석을 통해 과거 생물과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팀 콜슨 교수는 이번 결과를 "매우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발견"이라고 평가했습니다(출처: CNN). 한편, 브리스톨 대학교의 야콥 빈터 부교수는 나나이모테우티스가 해양 파충류 같은 대형 동물을 직접 사냥했을 가능성에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큰 먹이를 분해해 삼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며, 에너지 효율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먹이를 주로 섭취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나이모테우티스가 당시 생태계에서 강력한 포식자로서 역할을 했을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시각이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석 마모 흔적이라는 물리적 증거가 있는 만큼 강력한 포식 행동은 분명해 보이지만, 먹이 사슬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턱 화석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과학이 여전히 가설과 반론을 쌓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걸 이 논쟁이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생태적 지위란 특정 생물이 생태계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를 뜻하는데, 지금까지 백악기 해양 생태계는 척추동물 포식자 중심으로만 이해되어 왔습니다. 이번 발견은 무척추동물도 그 위치를 공유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고대 생태계의 복잡성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 사이언스지는 이번 연구 결과를 2026년 4월호에 공식 게재하며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출처: Science).

이번 연구를 접하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과거조차, 기술 하나가 바뀌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문어의 지능에 놀랐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 지능의 기원이 훨씬 오래됐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고생물학에 딱히 관심이 없었던 분이라도, 이번 연구는 한 번쯤 찾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숨겨진 과거가 새로운 기술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읽는 것만으로도 꽤 묵직한 감동이 있으니까요.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4/23/science/giant-octopus-cretaceous-study-scli-intl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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