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꽤 최근까지도 네안데르탈인을 그냥 '멸종한 구식 인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터키 남부의 한 동굴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그 고정관념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같은 도구, 같은 조개껍데기 — 7만 년 전 두 인류 집단이 동굴 하나를 두고 나눈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터키 동굴유적이 꺼낸 오래된 질문
혹시 고고학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또 상식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묘하게 설레는데, 이번 연구가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터키 남부에 위치한 위차으즐리 II 동굴은 고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발굴은 2020년에야 시작되었습니다. 터키 가지안테프 대학교의 이스마일 바이카라 박사 연구팀이 이끈 이 작업은 2025년 PNAS 저널에 게재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출처: PNAS(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동굴에서 발굴된 치아 화석 네 개와 턱뼈 일부는 놀라운 사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약 7만 7천 년 전부터 5만 9천 년 전까지 이 동굴을 사용했고, 그 이후 5만 9천 년 전부터 4만 7천 년 전 사이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같은 공간을 점유했다는 것입니다. 연대는 화석이 묻혀 있던 퇴적층(지층)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는데, 이를 퇴적층 연대 측정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퇴적층 연대 측정이란 화석이 포함된 흙이나 암석이 쌓인 시기를 분석해 유물의 나이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화석 자체에 직접 연대를 측정하기 어려울 때 보완적으로 활용됩니다.
두 집단이 같은 동굴을 수천 년 간격으로 번갈아 사용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건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두 인류가 공유한 문화, 무스테리안 석기의 흔적
같은 장소를 시간차를 두고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문화를 공유했다'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두 집단이 실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증거는 뭘까요?
핵심은 무스테리안(Mousterian) 양식의 석기 도구에 있습니다. 무스테리안이란 약 30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주로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하던 부싯돌 가공 기술 체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돌을 특정한 방식으로 떼어내 날카로운 날을 만드는 정교한 석기 제작 전통인데, 이 기술이 처음 발견된 곳이 프랑스의 암석 은신처였습니다. 그런데 위차으즐리 II 동굴에서는 네안데르탈인 층과 호모 사피엔스 층 모두에서 이 무스테리안 양식의 도구가 동일하게 출토된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호모 사피엔스가 그냥 따라 한 건가?"였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의 시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고고학자 루도빅 슬리마크는 이 발견이 현대 인류가 도착하면서 새로운 우월한 문화를 이식한 게 아니라, 이미 뿌리내린 지역 전통에 자연스럽게 편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습니다(출처: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두 집단이 사냥한 동물의 종류도 겹쳤습니다. 야생 염소, 사슴, 멧돼지 — 같은 지형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은 두 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 무스테리안 석기: 네안데르탈인 층과 호모 사피엔스 층 모두에서 동일한 양식 출토
- 사냥 대상: 야생 염소, 사슴, 멧돼지 등 종류가 일치
- 문화 해석: 호모 사피엔스가 기존의 지역 전통에 편입했을 가능성 제기
조개껍데기 하나가 뒤집은 상식
이번 연구에서 제가 가장 오래 멈췄던 부분은 석기가 아니라 조개껍데기였습니다. 먹기에도 너무 작은 연체동물의 껍데기가 왜 두 집단의 지층에서 모두 발견됐을까요?
문제의 조개는 콜룸벨라 루스티카(Columbella rustica)라는 종입니다.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는 이 작은 연체동물의 껍데기는 식용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작습니다. 그런데 일부 껍데기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를 '운반물(portable object)', 즉 원산지에서 의도적으로 가져온 장식품으로 분류했습니다. 여기서 운반물이란 단순히 우연히 섞인 게 아니라 사람이 특정 장소에서 수집해 이동한 물건을 가리키는 고고학 개념입니다.
이전까지 조개껍데기 구슬이나 장신구는 호모 사피엔스만의 상징적 사고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상징적 사고(symbolic thinking)란 어떤 사물에 실용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인지 능력을 말하는데, 이것이 현대 인류를 네안데르탈인과 구분 짓는 핵심 특성으로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발굴은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토 대학의 모리모토 나오키 연구원은 지중해 연안에 다른 조개껍데기 종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이 콜룸벨라 루스티카를 의도적으로 골라 수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건 제 경험에 빗대자면,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살 때 아무 물건이나 집는 게 아니라 특정한 의미를 가진 것을 고르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수만 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사는 승자 독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발견이 단순히 흥미로운 뉴스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역사를, 특히 인류의 역사를 '우월한 종이 열등한 종을 밀어낸 이야기'로 읽어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요?
약 6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현재의 터키와 레반트 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만남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고대 DNA 분석 결과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데, 오늘날 아프리카 이외 지역 출신 현대인의 유전체에는 약 1~4%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섞여 있습니다. 유전체(genome)란 한 생명체가 가진 모든 유전 정보의 총합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남부의 만드랭 동굴(Grotte Mandrin) 유적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드랭 동굴에서는 두 집단이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무스테리안 도구 대신 훨씬 정교하고 다른 방식의 석기를, 어쩌면 활과 화살 기술까지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슬리마크는 두 유적지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저는 이 말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평소에도 제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만날 때 언어와 생활 방식은 달라도 비슷한 가치관이나 습관에서 예상보다 쉽게 가까워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수만 년 전 서로 다른 인류 집단도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낭만일까요? 바이카라 박사가 말했듯, "문화는 생물학뿐만 아니라 지역 전통에 의해서도 형성된다"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네안데르탈인은 언제 멸종했나요?
A. 대략 4만 년 전을 전후해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위차으즐리 II 동굴의 경우 약 4만 7천 년 전까지 호모 사피엔스가 점유한 기록이 남아 있어, 두 집단의 공존이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Q. 현대 인류에게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남아 있나요?
A. 네, 아프리카 이외 지역 출신 현대인의 유전체에는 약 1~4%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밝혀진 사실인데, 이 말은 두 종이 단순히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손을 남길 만큼 가까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Q. 무스테리안 석기는 네안데르탈인만 만든 건가요?
A. 기존에는 무스테리안 석기를 거의 네안데르탈인의 전유물로 봤습니다. 그런데 위차으즐리 II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도 같은 양식의 도구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이 기술이 종을 넘어 전해졌거나 독립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두 집단의 관계가 단순한 경쟁 구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지 않을까요?
Q. 콜룸벨라 루스티카 조개껍데기가 장식품이라는 건 확실한가요?
A. 아직 "확실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연구자들도 이를 '운반물'로 표현하면서 장식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직접적인 증거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식용으로 쓰기엔 너무 작고, 일부에 구멍까지 뚫려 있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팀의 판단입니다.
결론
저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결국 잠정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번 연구가 그 감각을 다시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같은 도구를 만들고 같은 조개껍데기를 골라 담았다는 사실은, 문화가 혈통이나 종의 경계보다 훨씬 유연하게 흐른다는 것을 7만 년 전 동굴 안에서 이미 보여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앞으로 레반트 지역과 터키 일대에서 더 많은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두 집단의 만남이 어떤 방식으로 오늘의 인류를 만들었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고대 DNA 분석과 고고학 유적이 교차하는 이 분야의 후속 연구들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과거를 다시 읽는 일이 결국 지금을 이해하는 가장 긴 우회로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7/07/science/turkey-cave-neanderthals-humans-shared-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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