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박쥐가 바꾼 숲 (서식지, 산불 제로, 지역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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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멸종 위기 박쥐가 바꾼 숲 (서식지, 산불 제로, 지역 협력)

by trip.chong 202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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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를 보호한다고 했는데, 결국 27,000명의 생계가 살아났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잠깐 멈칫했습니다. 여름마다 산불 뉴스를 보며 숲이 타들어가는 장면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 피해가 사람의 밥상과 직결된다는 연결고리는 솔직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생태학자 이로로 탄시의 이야기는 그 연결고리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멸종위기 서식지, 불길 앞에 서다

박쥐
박쥐

나이지리아 남동부 크로스리버주의 아피산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24,700 에이커에 달하는 열대우림 지대입니다. 이 지역에서 탄시가 발견한 것은 짧은꼬리둥근잎박쥐였습니다. 무게가 약 7그램, 미국 5센트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나가는 이 작은 포유류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에 등재된 멸종위기종입니다. 여기서 IUCN 적색 목록이란 전 세계 동식물의 멸종 위험 수준을 평가해 등급별로 분류한 국제 공인 목록으로, 생물 다양성 보전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 활용됩니다. 전 세계 개체 수가 1,500마리 미만으로 추산된다는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언제든 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발견의 기쁨은 2주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거대한 산불이 보호구역을 덮쳤고, 숲의 절반 가까이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탄시가 입에 젖은 천을 대고 산 아래로 필사적으로 내려왔을 때, 방금 확인한 서식지가 그 불길 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릴 때 공원 봉사활동에서 주운 쓰레기봉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작은 실천이 환경을 바꾼다고 뿌듯해했던 그 기억과, 탄시가 맞닥뜨린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서식지 하나가 불탔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짧은꼬리둥근잎박쥐는 나이지리아에서 서식이 확인된 적 없던 종이 었고, 카메룬과 적도기니에서도 거의 목격 기록이 없던 종입니다. 사실상 유일하게 알려진 서식지 중 하나가 사라질 뻔한 것입니다.

산불 제로 캠페인의 실제 작동 방식

탄시가 2017년 설립한 소형 포유류 보호 단체 SMACON(소형 포유류 보전 네트워크)이 시작한 산불 제로 캠페인의 핵심은 놀랍도록 현실적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불 피우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크로스리버주 농민들은 수십 년간 농업용 소각, 즉 농지를 개간하거나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을 지르는 방식을 사용해 왔습니다. 문제는 이 소각이 통제 불능 상태로 번지면서 산불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탄시가 미국 서부의 화재 관리 시스템을 연구하며 파악한 것은, 산불 확산의 핵심 변수가 토양 함수율(soil moisture content)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토양 함수율이란 흙 속에 포함된 수분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수치가 일정 임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불길이 빠르게, 높은 강도로 번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기후 변화였습니다. 수십 년간 쌓인 농민들의 경험적 지식, 예컨대 "3월에 소각하면 안전하다"는 판단은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면서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현지 여성 농민이 탄시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냥 언제 태우는 게 제일 좋은지 알려주세요. 날씨가 변했잖아요." 기후 변화라는 과학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은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탄시 팀이 5개 마을에 도입한 기상 관측소는 온도, 습도, 풍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이 데이터는 색깔별 화재 위험 지수로 변환되어 마을 표지판에 표시되고, 빨간 경보가 뜨는 날에는 전령이 마을을 돌며 소각 금지를 알립니다. 위험도가 높은 날에는 "숲의 수호자"라 불리는 지역 주민 순찰대가 물통 배낭을 메고 도보와 오토바이로 취약 지점을 점검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22년~2025년 사이, 통제 불가능하게 번질 수 있었던 화재 74건 차단
  • 보호구역 인근 16개 마을, 약 27,000명의 농작물과 생계 보호
  • 5개 마을 기상 관측소 운영을 통한 실시간 화재 위험 모니터링 구축
  • 지역 어린이 대상 박쥐 보호·산불 예방 교육 프로그램 병행

골드만 환경상은 이 성과를 인정해 탄시에게 2025년 수상의 영예를 안겼습니다(출처: Goldman Environmental Prize). 골드만 환경상은 전 세계 풀뿌리 환경 운동가에게 수여되는 가장 권위 있는 환경 분야 상으로, '환경계의 노벨상'이라 불립니다.

지역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던 이유

제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탄시는 자신의 역할을 "안내자"가 아닌 "통역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정답을 들고 들어가 주민을 교육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사회가 이미 갖고 있는 지식과 새로운 과학 데이터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입니다.

이 방식이 현실적으로 유효한 이유가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 보전 전략에서 지역 사회 기반 보전(Community-Based Conservation, CBC)은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된 접근법입니다. CBC란 지역 주민을 보전 활동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외부 주도 프로젝트보다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다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되어 있습니다(출처: IUCN). 탄시의 프로그램은 이 원칙을 교과서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박쥐에 대한 인식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박쥐는 주술과 연관되거나 식용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박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쥐는 동력 비행이 가능한 지구상 유일한 포유류이며, 씨앗 산포(seed dispersal)와 화분 매개(pollination)를 담당하는 생태계 핵심 종입니다. 씨앗 산포란 동물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이동시켜 식물이 새로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생태적 기능을 말합니다. 이 기능 하나가 사라지면 열대우림의 식생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박쥐 보호 운동이 지역 농민의 카카오 농장을 살리는 이야기로 이어질 거라고는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한 농민이 탄시에게 건넨 말, "당신 덕분에 제 농장이 살았어요"는 그래서 더 울림이 크게 남았습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콩고 민주 공화국, 인도네시아, 마다가스카르로의 확장을 논의 중입니다. 하나의 멸종위기종 서식지에서 시작된 작은 캠페인이 국경을 넘는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가 남기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자연 보전은 동물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 저도 일상 속에서 환경을 지키는 작은 실천을 이어가고 있지만, 탄시의 사례를 보고 나니 그 실천이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당장 산불 현장에 뛰어들 수는 없더라도, 지역 생태계와 주민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시작일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science/iroro-tanshi-bats-nigeria-goldman-prize-spc-in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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