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상수 (측정 불확도, 비틀림 저울, 계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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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중력 상수 (측정 불확도, 비틀림 저울, 계측학)

by trip.chong 2026.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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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은 너무나 당연한 힘이라 의심해 본 적이 없으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225년 넘게 중력의 기본값을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빛의 속도는 소수점 아홉 자리까지 알려져 있는데, 지구를 발로 딛게 해주는 바로 그 힘의 상수는 겨우 네 자리 숫자에 불과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측정할수록 멀어지는 숫자, 빅 G의 정체

중력 상수(G)는 우주 어디에서든 두 질량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세기를 결정하는 값입니다. 1798년 영국 과학자 헨리 캐번디시가 처음 측정한 이후, 지금까지 최소 16번 이상의 독립적인 측정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번 결과가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국제과학위원회 데이터 위원회(CODATA)는 기본 물리 상수의 공인 권장값을 발표하는 기관입니다. 여기서 CODATA란 각국 과학계가 합의하여 채택하는 물리 상수의 표준 수치를 관리하는 국제 위원회를 의미합니다. 이 기관이 공표하는 G 값의 측정 불확도는 22ppm(parts per million), 즉 백만분의 22 수준입니다. 측정 불확도란 어떤 값을 측정할 때 결과에 포함될 수 있는 오차 범위를 수치로 표현한 것입니다. 22ppm이 얼마나 큰 오차인지 감이 오지 않으신다면, 시계가 이 정도 오차를 가진다면 1년에 12분씩 틀리게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출처: CODATA, NIST).

저는 악기를 배울 때 처음에는 소리가 조금 어긋나도 "뭐, 비슷하면 되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밀한 앙상블 연주에서는 그 미세한 차이가 전체 소리를 망가뜨린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서야 알았습니다. 물리 상수의 오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아 보이는 숫자 하나가 과학 전체의 신뢰도를 흔들 수 있습니다.

중력 측정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 중력은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힘이라 실험실 환경에서 감지하기 힘들다
  • 실험에 쓰이는 질량체가 작을수록 발생하는 중력도 극히 미세해진다
  • 중력은 모든 물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실험실의 벽, 바닥, 장비 자체가 모두 오차 원인이 된다

10년을 버틴 실험, 비밀 봉투가 열리던 날

이번에 결과를 발표한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물리학자 스테판 슐라밍거는 2016년부터 약 10년간 프랑스 국제도량형국(BIPM)에서 진행된 이전 실험을 독립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만약 두 실험이 같은 값을 도출해 낸다면, 빅 G를 둘러싼 논란이 일부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험의 핵심 장비는 비틀림 저울(torsion balance)이었습니다. 비틀림 저울이란 얇은 섬유에 매달린 금속 추가 중력에 의해 얼마나 비틀리는지를 측정하여 극히 미세한 힘을 감지하는 장치입니다. 이 비틀림의 각도는 육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고정밀 센서로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실험은 외부 진동이나 온도 변화가 측정값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슐라밍거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기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동료 연구자가 실제 측정값에 임의의 오프셋 값을 더해두고, 그 숫자를 비밀 봉투에 봉인해 두었습니다. 슐라밍거는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자신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시험 공부를 할 때 답지를 먼저 보고 문제를 풀면 어느새 그 답에 맞춰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슐라밍거의 방식은 그 함정을 철저히 차단한 것입니다. 솔직히 이 발상 자체가 저에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과학적 엄밀함이 장비 수준만이 아니라 연구자의 심리 설계에서도 나온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2024년 7월, 컨퍼런스 무대에서 봉투가 공개되었습니다. 최종 G 값은 6.67387 × 10⁻¹¹m³/kg/s²로 산출되었고, 이는 재현 대상이었던 BIPM 실험 결과보다 0.0235% 낮은 수치였습니다. CODATA 권장값과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출처: Metrologia, IOP Publishing).

실패한 실험인가, 아니면 더 큰 배움인가

결과가 맞지 않았으니 이 10년은 실패인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틀린 문제를 풀었을 때 단순히 답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과, 왜 틀렸는지를 끝까지 파고드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가 훨씬 더 오래 남습니다.

슐라밍거 자신도 이 실험을 "암흑의 계곡을 걷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모든 측정은 배움의 기회"라는 시각으로 돌아왔습니다. 계측학(metrology)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정확한 태도입니다. 계측학이란 측정의 원리, 방법, 한계를 연구하는 과학 분야로, 의료, 무역, 전력 계량 등 일상의 신뢰 기반을 이루는 학문입니다. 전기 요금을 정확히 내는 것도, 약의 용량이 정밀하게 맞춰지는 것도 결국 계측학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측정값의 불일치에 대해 연구자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리 법칙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발견되지 않은 아주 미세한 계통 오차(systematic error), 즉 측정 과정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발생하는 오류가 더 유력한 원인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슐라밍거의 팔뚝에는 그가 직접 참여해 2019년에 확정된 플랑크 상수 숫자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G 값이 밝혀지더라도 그 숫자는 절대 새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까다로운 숫자니까요."

결국 이 이야기가 저에게 남긴 건 하나입니다. 정밀 측정학은 단순히 어떤 수치에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요소를 끝까지 규명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 완벽한 답을 내놓지 못했어도 이 실험은 분명히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습니다. 중력 상수가 어떻게 정확히 밝혀질지 앞으로의 연구가 궁금하시다면, NIST나 BIPM의 최신 발표를 주기적으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5/07/science/gravitational-constant-measure-gravity-bi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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