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앵무새의 사회적 학습 (모방 행동, 순응성, 도시 적응)
본문 바로가기
과학

야생 앵무새의 사회적 학습 (모방 행동, 순응성, 도시 적응)

by trip.chong 2026. 5. 10.
반응형

앵무새
야생 앵무새

처음 가는 식당에서 메뉴판을 펼쳐 들고 멍하니 있다가, 결국 옆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의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거 주세요" 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꽤 자주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를 보니, 이런 행동이 저만의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꽤 보편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생 앵무새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음식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모방 행동, 동물도 눈치를 본다

시드니 도심 5개 서식지에서 700마리가 넘는 야생 유황앵무(Cacatua galerita)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2026년 PLOS Biology에 발표되었습니다. 유황앵무란 호주 전역에 분포하는 대형 흰색 앵무새로, 도시 환경에 특히 잘 적응한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진은 앵무새 두 마리를 먼저 파란색, 빨간색으로 염색된 아몬드를 먹도록 훈련시켰습니다. 원래 아몬드를 매우 싫어하던 개체들이었습니다. 그 훈련된 앵무새가 무리 앞에서 아몬드를 먹자, 주변 앵무새들이 따라먹기 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발모럴 비치 지역에서 7분, 클리프턴 가든스 지역에서는 1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새로운 모임에 처음 갔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 앉아야 할지, 어떤 톤으로 말해야 할지를 분위기에서 읽어냈습니다. 앵무새들이 7분 만에 낯선 음식에 손을 뻗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입니다. 사회적 학습이란 다른 개체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상호작용함으로써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혼자 시행착오를 겪는 대신, 이미 경험한 타인의 결과를 참고하는 전략입니다. 야생 까마귀와 갈까마귀에서도 유사한 전략이 관찰된 바 있으며, 노르웨이에서 진행된 실험실 연구에서는 쥐가 동료의 숨결 냄새만으로도 먹이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출처: PLOS Biology).

순응성, 어릴수록 더 강하게 작동한다

이번 연구에서 저를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나이에 따른 순응성의 차이였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 앵무새일수록 다수의 선택을 따라 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게 나타났고, 성체 앵무새는 단순히 많은 수가 하는 행동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의 행동에 더 주목했습니다.

순응성(conformity)이란 집단 내 다수의 행동이나 규범을 따르려는 심리적·행동적 경향을 뜻합니다. 어린 개체일수록 아직 지역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수의 행동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고 빠른 학습 전략이 됩니다. 쉽게 말해, 모르면 일단 많이 하는 쪽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동물의 모방 행동이 나이에 따라 이렇게 정교하게 달라진다는 점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사람도 어릴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자기 취향이 생기고 신뢰하는 사람의 의견을 선택적으로 반영하게 됩니다. 앵무새가 그와 똑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묘하게 반가웠습니다.

연구진이 주목한 또 다른 사실은 성별에 따른 차이였습니다. 수컷은 같은 수컷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었고, 암컷은 상대방의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사회적 정보를 받아들여 행동을 바꾸는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학습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성별, 연령, 집단 소속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는 복잡한 행동 체계임을 이번 연구는 보여줍니다.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핵심 발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훈련된 앵무새의 행동을 본 무리는 최소 1분 이내에 새로운 먹이를 시도
  • 훈련된 개체가 없는 집단은 새 먹이 시도까지 4일 소요
  • 20일 실험 종료 시점에 5개 지역 349마리가 색깔 아몬드 섭취 경험
  • 어린 앵무새는 다수 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순응성이 강함
  • 성체 앵무새는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의 행동을 선별적으로 참고

도시 적응, 정보 공유가 생존을 결정한다

도시 환경은 야생 동물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던집니다. 외래 식물, 침입종, 쓰레기통 속 음식물 등 본래 자신의 서식지에서는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자원들이 매일 등장합니다. 이 상황에서 모든 새로운 먹이를 혼자 검증하며 먹어보는 것은 독성이나 기생충 감염의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일이 됩니다.

여기서 신조성(neophobia)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신조성이란 낯선 자극이나 새로운 대상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행동 성향을 뜻합니다. 많은 동물들이 새로운 먹이 앞에서 주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신조성 때문인데, 사회적 학습은 이 신조성을 낮추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동료가 먹고 멀쩡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혼자 감수해야 했던 위험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을 때, 혼자 유튜브만 보며 따라 하던 것보다 실제로 그 취미를 즐기는 사람 옆에서 같이 해봤을 때 훨씬 빠르게 익숙해졌습니다. 실패의 두려움 자체가 줄어드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앵무새들이 동료를 130번이나 관찰한 뒤에야 용기를 내어 먹어봤다는 대목에서, 그 신중함이 오히려 납득이 갔습니다.

영국 더럼 대학교 심리학 조교수 레이첼 해리슨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순응적 성향이 생애 주기 동안 변화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개인이 지역 지식을 가장 빠르게 습득해야 하는 발달 단계에서 정점에 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밝혔습니다(출처: 더럼 대학교). 이 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모방이 단순히 주체성 없는 행동이 아니라 발달 단계에 맞게 설계된 생존 전략이라는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느낀 것도 그랬습니다. 학교에서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처음 섞였을 때, 주변을 살피며 행동 기준을 잡는 것이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빠른 적응을 가능하게 해준 방법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에 모방을 통해 배운 것들이 지금의 판단 기준이 된 것도 많습니다.

사회적 학습이 도시라는 복잡한 환경에서 생존의 열쇠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전략이 인간과 앵무새 사이에서 놀랍도록 닮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혼자 모든 걸 감수하며 탐색하는 것보다, 이미 겪어본 사람(혹은 앵무새)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때로는 더 안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주변을 살피는 것을 머뭇거림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수백만 년에 걸쳐 검증된 학습 방식일 테니까요. 다음에 낯선 메뉴판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옆 테이블을 한번 슬쩍 봐도 괜찮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5/01/science/parrots-copy-friends-new-foods-study-intl-scli

반응형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