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라와 일리아스 (장례 문화, 파피루스, 고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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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집트 미라와 일리아스 (장례 문화, 파피루스, 고대 문학)

by trip.chong 202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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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미라의 복부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구절이 발견되었습니다. 단순한 부장품이 아니라 문학 작품이 장례 의식에 사용된 최초의 사례입니다. 박물관에서 작은 토기 하나를 보며 '이게 정말 옛사람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구나' 싶었던 그 느낌이, 이 뉴스를 접했을 때 다시 떠올랐습니다.

장례 문화 —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이렇게 달랐습니다

박물관에 갔을 때 저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유물 하나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요. 그런데 이번 발견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단순한 도구나 장신구가 아니라, 문학 작품 그 자체가 장례 절차에 쓰였다는 사실이니까요.

이번에 발굴된 미라는 이집트의 고대 도시 옥시린쿠스(Oxyrhynchus)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옥시린쿠스란 나일강 서쪽 사막 지대에 위치했던 고대 도시로, 수많은 파피루스 문서가 발굴되어 고전 문헌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온 유적지입니다. 이 지역에서 나온 미라의 복부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제2권 중 '선박 목록(Catalogue of Ships)' 부분이 적힌 파피루스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기존에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미라들에도 파피루스가 함께 들어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의례적 문구, 즉 종교적·주술적 목적의 정형화된 텍스트였습니다. 문학 작품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의 고전 문헌학자 이그나시-사비에르 아디에고 교수가 직접 이를 확인했으며, 연구팀은 미라가 약 1,600년 전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출처: 바르셀로나 대학).

파피루스 — 부서진 조각에서 읽어낸 고대의 흔적

제가 역사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불완전한 유물에서 완전한 이야기를 추론하는 과정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피루스 연구도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상태가 많이 훼손되어 조각나 있었지만, 연구팀은 그 내용이 「일리아스」의 특정 구절임을 밝혀냈습니다.

파피루스(papyrus)란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 유역에 자라는 파피루스 식물의 줄기를 얇게 잘라 겹쳐 눌러 만든 일종의 기록 매체입니다. 쉽게 말해 현대의 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지만, 습기와 충격에 훨씬 취약해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부스러집니다. 그래서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연구팀은 파피루스를 물리적으로 펼치거나 분리하지 않고, 비파괴 분석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비파괴 분석이란 유물에 직접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고 내부 구조나 내용을 파악하는 기술로, X선 촬영이나 적외선 분광법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디에고 교수는 "엑스레이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파피루스를 파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보존 중심의 연구 태도는 훗날 더 좋은 기술이 개발됐을 때 재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 판단입니다.

고대 문학 — 「일리아스」는 왜 무덤 속에 있었을까

솔직히 이건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리아스」라면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인데, 그걸 굳이 이집트 미라의 복부에 붙여두었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오히려 더 깊은 의미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고전 문헌학(Classical Philology)이란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쓰인 문헌을 원전 그대로 해독하고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수천 년 전의 텍스트를 현대의 언어와 지식 체계로 재해석하는 작업입니다. 이 분야 전문가들도 이번 발견 앞에서는 "왜 문학 텍스트가 장례 의식에 쓰였는지 아직 해석할 수 없다"라고 솔직히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제기된 가능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방부 처리자(미라 제작자)의 일종의 서명이나 표식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
  • 죽은 이의 영혼을 보호하거나 저승에서의 안식을 기원하는 의례적 기능
  • 망자가 생전에 특별히 아꼈던 구절을 함께 묻어주는 개인적 풍습

어느 쪽도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 지역 미라들 중 일부는 혀에 금박이나 구리를 붙인 채 발견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사후 세계에서 언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적 장치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문학 파피루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속단하기 이른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연구 — 기술이 답해줄 질문들

이번 발굴 자체도 의미 있지만, 저는 솔직히 이 발견 이후가 더 기대됩니다. 아직 본격적인 첨단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연구팀이 주목하는 기술 중 하나는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Multispectral Imaging)입니다.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나 적외선 파장을 활용해 문서의 잉크나 필적을 선명하게 복원하는 기술로, 육안으로는 전혀 읽히지 않던 텍스트도 판독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기술이 적용된다면 파피루스에 담긴 내용을 훨씬 정밀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 분석을 병행하는 이런 연구 방식은 이미 세계 여러 유적지에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의 디지털 보존과 과학적 분석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으며, 비파괴 기술을 활용한 유물 연구가 향후 고고학의 핵심 방향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UNESCO).

제 경험상 이런 발굴은 단 하나의 발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실마리가 다른 유적지나 문헌과 연결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역사의 빈 칸이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번 미라와 「일리아스」의 조합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더 들려줄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결국 이번 발견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화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풍부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례적 주문이 아닌 문학 작품을 죽은 이 곁에 두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문자와 이야기에 부여했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해 파피루스의 내용이 더 선명하게 밝혀진다면,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가 어떻게 뒤섞이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단서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을 기다려보겠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4/30/science/egyptian-mummy-iliad-scli-in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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