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8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전쟁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수많은 희생자 기록 앞에서 한참을 멈췄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접한 호후쿠마루(Hofuku Maru)호 난파선 발견 소식은 그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한 역사적 발굴이 아니라, 80년 동안 바다 밑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옥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지옥선(Hell Ship)'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증언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지옥선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 포로를 수송하기 위해 사용한 표식 없는 민간 선박을 가리킵니다. 국제법상 포로 수송 선박임을 알리는 표식을 달아야 하지만, 이 배들은 아무런 식별 마크 없이 항해했습니다.
호후쿠마루호에 탑승한 영국군과 네덜란드군 포로 약 1,250명은 두 개의 화물창(Cargo Hold)에 나뉘어 수용되었습니다. 화물창이란 선박 내부에서 짐을 싣는 공간으로, 환기나 채광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구조입니다. 포로들은 교대로 누워야 할 만큼 빽빽하게 갇혔고, 하루 허용된 물의 양은 고작 340밀리리터에 불과했습니다. 찜통더위 속에서 그 정도 수분으로 버텨야 했으니, 병자가 속출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생존자였던 제임스 깁슨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포로들은 너무 쇠약해서 갑판의 간이 화장실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식사통을 대신 사용해야 했습니다. 출항 전날 이미 장교와 사병의 3분의 1 이상이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 글자로만 보아도 숨이 막혔습니다.
아군의 어뢰가 배를 두 동강 낸 순간
1944년 9월 21일, 남중국해를 항해하던 호후쿠마루호는 미군 함재기(艦載機)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함재기란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군용 항공기를 뜻하는데, 이날 공격을 가한 것은 USS 벙커 힐(USS Bunker Hill) 항공모함 소속 전투기들이었습니다. 조종사들이 표식 없는 이 선박을 일반 군용 화물선으로 오인한 것은 어떻게 보면 구조적으로 예정된 비극이었습니다.
어뢰 한 발이 명중하면서 배는 몇 분 만에 두 동강이 나 침몰했습니다. 화물창 안에 갇혀 있던 포로 대부분은 탈출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인원은 약 200명, 전체의 6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아군의 오인 공격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전쟁이 가진 비극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제가 평소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해온 전쟁 이야기는 주로 전선에서의 전투였는데, 이처럼 이동 중에 발생한 참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운용한 지옥선은 총 56척에 달하며, 수송된 포로의 수는 62,000명을 넘습니다(출처: 헬쉽 기념 재단 공식 자료). 이 중 연합군의 공격으로 침몰한 배가 19척이고, 지금도 5척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호후쿠마루호는 바로 그 미확인 목록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사례입니다.

난파선 발견을 가능하게 한 역사 연구
이번 발견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첨단 장비가 아니라, 낡은 문서를 파헤친 연구자들의 집요함이었습니다. 헬쉽 기념 재단(Hell Ship Memorial Foundation)의 팀 베켄솔과 존 듀레스키는 일본과 미국 군사 기록 보관소를 수년간 뒤졌고, 결정적인 단서는 호송대 선두 함선 장교들이 남긴 일본어 문서에서 나왔습니다. 이 문서에는 공격 당시 각 함선의 위치를 나타내는 타임라인과 지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정보를 USS 벙커 힐의 항공기 작전 보고서(Aircraft Action Report)와 대조했습니다. 항공기 작전 보고서란 공격 임무를 수행한 항공기 조종사가 임무 직후 제출하는 상세 기록으로, 공격 시각, 위치, 표적 정보 등이 포함된 공식 군사 문서입니다. 두 문서의 내용이 맞아떨어지면서 탐색 구역이 크게 좁혀졌습니다.
이후 연구팀은 음파 탐지기(Sonar)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음파 탐지기란 수중에 음파를 발사하고 반사파를 분석해 해저 지형이나 물체를 파악하는 장비로, 수중 탐사의 기본 도구입니다. 조사 결과 루손섬 서쪽 잠발레스 주 인근 수심 약 50미터 지점에서 난파선이 확인되었습니다. 연구팀이 이 난파선이 호후쿠마루호라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난파선의 전체 크기가 1919년 건조된 호후쿠마루호의 설계도와 일치
- 선체가 두 동강 난 상태로, 미일 양측 기록의 침몰 형태와 부합
- 돛대와 화물창의 위치가 원본 선박 도면과 동일
- 현지 어부들이 오래전부터 해당 위치에 대형 난파선이 있다고 증언
네덜란드 문화유산청(Rijksdienst voor het Cultureel Erfgoed)은 이 보고서를 검토한 뒤 2025년 6월 8일, 해당 난파선이 "거의 확실히" 호후쿠마루호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출처: 네덜란드 문화유산청).
발견 이후 남겨진 질문들
난파선이 확인된 지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중 고고학(Underwater Archaeology) 팀이 잠수 중 선체 갑판에서 인골을 발견했지만, 화물창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았습니다. 수중 고고학이란 해저나 강·호수 바닥에 잠긴 역사 유적과 유물을 발굴·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일반 고고학과 달리 조류, 시야 제한, 수압 등 극한 환경에서 진행됩니다. 캘빈 마이어스 박사 역시 사진측량(Photogrammetry) 기법을 통해 수백 장의 사진으로 3D 모델을 구성했는데, 화산재로 뒤덮인 탓에 식별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측량이란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특수 소프트웨어로 합성해 3차원 지형 모델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네덜란드 문화유산청은 이 난파선을 전쟁 희생자들의 무덤으로 간주하고 발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저는 이 결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유해를 꺼내는 것만이 추모는 아닐 테니까요. 다만 한편으로는, 아직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는 유족이 있다면 그분들의 심정은 어떨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침몰한 또 다른 지옥선 오료쿠마루(Oryoku Maru)호의 경우, 미 국방부 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이 올해 초부터 화물창 내 퇴적물을 제거하고 유해 신원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DPAA란 미국 국방부 산하 기관으로, 전쟁 중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임무를 담당합니다. 두 사례를 나란히 보면, 각국이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 이름 모를 병사들의 기록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감정, 그리고 이번 기사를 읽으며 다시 느낀 감정은 결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입니다. 호후쿠마루호의 발견이 단순한 뉴스로 소비되지 않고, 전쟁 속에 묻혀 있던 더 많은 진실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옥선이 다섯 척이나 더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아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6/18/science/hofuku-maru-wwii-hell-ship-dis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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