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래된 나무가 그냥 '오래 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1,200년을 버텨온 나무라면 앞으로도 거뜬할 거라고요. 그런데 로빈 후드의 전설이 깃든 영국 셔우드 숲의 메이저 오크(Major Oak)가 올봄 결국 새 잎을 내지 못하고 고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안일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로빈 후드 전설이 깃든 나무, 메이저 오크
메이저 오크는 수관 폭이 28미터, 줄기 둘레가 무려 11미터에 달했던 참나무입니다. 수관 폭이란 나무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만들어낸 그늘의 너비를 말하는데, 28 미터면 도로 왕복 4차선 정도를 통째로 덮고도 남는 크기입니다. 이 나무가 영국에서 가장 큰 나무 중 하나로 꼽혔던 이유가 바로 이 압도적인 수형(樹形)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오래된 나무나 문화유적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백 년 된 나무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그 묘한 경외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는 그 나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외부 위협을 맞서고 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로빈 후드와 메이저 오크의 연관성에 대해 "전설 속 나무이니 실제 역사적 근거가 확실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유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더럼 대학교의 역사학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세 로빈 후드 이야기에는 오크 나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초기 이야기 속에 "트리슬 나무"라 불리는 만남의 장소가 등장하며, 그것이 특정 나무와 결합되면서 메이저 오크라는 상징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설이 역사를 덧입혀 가는 방식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토양 압축과 기후변화, 나무를 죽인 두 가지 원인
일반적으로 나무가 죽으면 병해충이나 노령(老齡)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메이저 오크의 경우 핵심 원인은 달랐습니다.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RSPB)는 토양 압축(soil compaction)과 반복적인 폭염·가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 RSPB).
토양 압축이란 수많은 방문객이 나무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흙 입자 사이의 공간이 없어지고 토양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나무뿌리가 산소와 수분을 흡수할 통로가 막혀버리는 것입니다. 유명 관광지가 된 대가가 이렇게 혹독할 줄은, 제가 직접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더해졌습니다. 2022년 7월 영국은 섭씨 40도라는 기록적인 폭염을 경험했고, 이후 5번의 극심한 가뭄 여름이 이어졌습니다. 나무 전문가들은 이 시기와 메이저 오크의 쇠퇴 시점이 정확히 겹친다고 분석했습니다. 제 경험상 공원이나 산을 다니다 보면 나무뿌리 주변에 데크나 울타리를 설치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제는 그게 단순한 안전시설이 아니라 나무의 생존을 지키는 장치라는 걸 실감합니다.
메이저 오크가 겪은 위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십 년에 걸친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근권부(根圈部) 토양 압축
- 2022년 영국 역사상 최고기온 기록을 포함한 5번의 혹서기
- 수관(樹冠)과 뿌리 사이의 수분·양분 공급 체계 붕괴
- 이미 진행된 세포 조직 손상으로 인한 회복 불가 상태
죽어서도 숲을 지키는 고목의 생태적 역할
나무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번 기사를 읽고 그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메이저 오크는 고사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예정입니다. 죽은 고목은 생태학적으로 고사목(枯死木, deadwood)이라 불립니다. 고사목이란 살아있는 나무와 달리 껍질과 내부 조직이 서서히 분해되면서 딱따구리, 곰팡이, 딱정벌레류 등 수백 종의 생물에게 서식지와 먹이를 제공하는 특수한 생태 환경을 말합니다. 실제로 유럽 삼림 연구에 따르면, 숲 속 고사목 하나가 제공하는 생물다양성은 살아있는 나무보다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출처: 유럽 삼림연구소 EFI).
제가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자연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낸다는 것. 메이저 오크는 살아있을 때는 전설의 상징으로, 죽고 나서는 셔우드 숲 생태계의 한 축으로 계속 존재하게 됩니다. 앞서 이 나무의 도토리와 가지로 키운 묘목들이 이미 런던의 윈필드 하우스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 심겼다는 사실도, 이 나무의 생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연유산 보존,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들
솔직히 저는 이 소식을 읽으면서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유명하다는 곳에 가면 사람들이 몰리고, 그 발걸음이 쌓여 결국 그 장소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역설. 메이저 오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수목 관리 분야에서는 이런 상황을 수목 과부하(tree overload)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수목 과부하란 나무가 생물학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외부 스트레스의 한계를 초과하여 회복력이 무너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메이저 오크처럼 이미 수관 지지대를 설치하고 울타리를 친 상태에서도 관리가 역부족이었다면, 처음부터 방문 인원을 제한하거나 탐방로를 우회시키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호 울타리만 쳐두면 충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미 토양이 굳어버린 이후의 조치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RSPB 관계자는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메이저 오크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 더 서 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고사목 상태에서도 관리의 손길이 계속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자연유산은 한번 지정하고 울타리 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살피고 개입해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이번 사례가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1,200년을 버텨온 나무가 결국 사람의 발길과 뜨거워진 기후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이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유명한 자연 명소를 찾을 때 탐방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 나무 뿌리 주변을 밟지 않는 것처럼 작은 행동 하나가 쌓여 다음 세대에 전해질 자연을 지킵니다. 메이저 오크의 자리에 서 있을 고사목이 그 사실을 오랫동안 증언해 줄 것입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6/17/science/major-oak-tree-robin-hood-dead-scli-in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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