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지 180년이 지난 사람의 얼굴을 과학이 되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편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이 소식을 접하고도 반쯤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 보니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DNA 하나로 이름도 없이 북극 땅에 묻혀 있던 선원 4명이 18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이야기였으니까요.

북극에 묻힌 탐험대의 배경과 맥락
1845년, 영국 해군은 129명의 선원을 두 척의 배에 태워 북극으로 보냈습니다. 목적지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였습니다. 북서항로란 캐나다 북쪽 북극해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상 루트를 말합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기존 항로보다 훨씬 짧아, 당시 영국 해군과 상인들이 오랫동안 갈망하던 길이었습니다.
HMS 에레버스호와 HMS 테러호에 탔던 선원들은 결국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배는 북극 빙하에 갇혔고, 1848년 4월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킹 윌리엄 섬 서쪽 해안을 따라 육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전원 사망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가족들과 오래된 족보를 꺼내본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남아 있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괜히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느낌이 이 기사를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역사책 속 탐험대원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이었을 텐데, 그들이 176년 동안 북극 땅에 이름 없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DNA 신원확인이 밝혀낸 것들
이번 연구에서 핵심적으로 활용된 기술이 고대 DNA 분석, 즉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입니다. 고고유전학이란 유골이나 치아 같은 고고학 시료에서 유전 물질을 추출해 과거 인물의 혈통과 신원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오래된 유해에서 DNA를 뽑아낸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지 의심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뼈와 치아에는 핵 DNA와 미토콘드리아 DNA가 수백 년이 지나도 보존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해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분석했습니다.
- 미토콘드리아 DNA(mtDNA): 모계, 즉 어머니에서 딸로만 전달되는 DNA로, 모계 혈통을 추적하는 데 사용됩니다.
- Y 염색체 DNA: 부계, 즉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달되는 DNA로, 남성 계보를 추적할 때 활용됩니다.
두 방식을 병행하면 직계 후손들과의 유전적 일치 여부를 훨씬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털루 대학교와 레이크헤드 대학교 연구팀은 이 방식으로 에레버스호 선원 윌리엄 오렌, 데이비드 영, 존 브리젠스와 테러호 선원 해리 페글러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와 Polar Record에 각각 발표되었습니다(출처: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놀랐던 건 페글러의 사례입니다. 1859년 수색대가 발견했을 당시, 그의 시신 옆에는 개인 문서가 있었지만 계급에 맞지 않는 하급 선원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테러호의 선수 돛대 책임자(Foremast Man)였던 페글러가 왜 하급 선원의 제복을 입고 있었는지, 166년간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선수 돛대 책임자란 배의 앞돛대와 삭구를 관리하는 선원들을 통솔하는 하급 장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급 복장으로 발견됐다는 건 분명히 뭔가 사연이 있다는 뜻이었는데, DNA 분석으로 신원이 확정되고 나서야 "항해 중 강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음주와 반란 행위 기록이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 미스터리는 문헌 자료로만 풀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런 사건들은 오히려 과학 기술이 결합될 때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더라고요.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법의 인류학 기술이 등장하는 회차들이 가장 극적인 반전을 담고 있었습니다.
역사 연구의 미래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이 연구가 단순히 신원 확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저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BBC 뉴스 기자 리치 프레스턴은 연구팀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존 브리젠스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역사광이라고 했는데, 저도 그 기분이 어떨지 조금은 상상이 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오래된 사진 한 장에서 낯선 얼굴이 갑자기 '우리 가족'으로 연결될 때 느끼는 그 묘한 감정은 해본 사람만 압니다.
이번 연구가 앞으로 역사 연구에 시사하는 바는 꽤 큽니다.
- 무명 유해의 신원 복원: 기록을 남기지 못한 하층 선원들까지 DNA로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 계보 연구의 확장: 후손들이 자발적으로 DNA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탐험대원의 신원 확인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사망 원인 규명: 유해 분석을 통해 납 중독, 괴혈병 등 프랭클린 탐험대의 비극적 결말을 둘러싼 원인을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
법의 인류학(Forensic Anthropology)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법의 인류학이란 유골을 분석해 나이, 성별, 병리학적 특징 등을 파악하는 학문으로, 이번 연구에서도 DNA 분석에 앞서 유해를 먼저 법의 인류학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이 두 분야가 결합될 때 과거의 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으로 복원될 수 있는지, 브리젠스가 "갈색 눈에 검은 머리, 11살에 음악가로 항해를 시작한 소년"으로 묘사되는 대목에서 실감했습니다.
그리니치 왕립박물관은 프랭클린 탐험대 관련 유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며, 에레버스호 진수 200주년 기념 특별전을 준비 중입니다(출처: 그리니치 왕립박물관). 이처럼 박물관과 학계가 협력해 역사적 맥락을 시각화하는 방식도, 단순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역사를 만날 때 가장 아름다운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록이 사라지더라도 DNA라는 생물학적 흔적은 남는다는 사실이, 뭔가 위안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사라지지만, 몸 안에 새겨진 정보는 후대에 의미를 전할 수 있다는 것. 프랭클린 탐험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후손들이 DNA를 공유하면서 계속 새로운 장이 써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그리니치 왕립박물관의 전시 일정도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5/12/science/franklin-expedition-dna-study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네안데르탈인 치과 치료 (충치 치료, 석기 드릴) (0) | 2026.05.15 |
|---|---|
| 아프리카 대륙 분열 (지각 균열, 판 경계, 맨틀 유체) (0) | 2026.05.15 |
| 냉각 페인트 (수동 복사 냉각, 대기 수분 포집) (1) | 2026.05.14 |
| 4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신종 말벌 (0) | 2026.05.13 |
| 펭귄과 PFAS (영구화학물질, 생체축적, 환경오염) (0) | 2026.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