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신종 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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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4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신종 말벌

by trip.chong 2026.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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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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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TV 앞에 엎드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했죠. 그 시절 저를 자연의 세계로 이끌어준 목소리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애튼버러입니다. 그가 100세 생일을 맞았고, 과학자들이 새로 발견한 말벌의 속명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는 소식에 괜히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4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신종 말벌, 그리고 분류학의 세계

혹시 박물관 수장고에 수십 년째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는 표본이 있다는 걸 아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런던 자연사 박물관 이야기를 보고 나서야 실감이 됐습니다.

1983년 칠레 남부 발디비아 주에서 채집된 작은 말벌 표본 하나가 무려 43년 동안 박물관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원봉사자 아우구스틴 드 케텔라에레가 기생벌 조사 작업 중 이 표본을 다시 꺼내 들었고, 정밀 분석 결과 기존 어떤 속(屬)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생물로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속(屬, genus)이란 생물 분류 체계에서 종(species) 바로 위 단계에 해당하는 단위로, 서로 가까운 종들을 묶는 그룹을 말합니다. 새로운 종이 발견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아예 새로운 속이 만들어진 것은 훨씬 더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이 말벌에 붙여진 학명은 아텐보로눌루스 타우(Attenboroughnculus tau)입니다. 이항명명법(binomial nomenclature)에 따라 지어진 이름인데, 이항명명법이란 18세기 스웨덴 박물학자 카롤루스 린네가 고안한 종 명명 체계로, 속명과 종명 두 단어를 조합해 생물의 학명을 표기하는 방식입니다. 속명 '아텐보로눌루스'는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이름에서 왔고, 종명 '타우'는 이 말벌의 복부에 그리스 문자 τ(타우)와 닮은 무늬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 연구는 학술지 《Journal of Natural History》에 발표되었습니다(출처: Journal of Natural History).

몸길이가 고작 3.5밀리미터에 불과한 이 작은 말벌이 속한 아과(subfamily)의 분포 지역도 범상치 않습니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기니에 걸쳐 흩어져 있는데, 이 분포는 고대 초대륙 곤드와나(Gondwana)와 연결됩니다. 여기서 곤드와나란 약 1억 8천만 년 전까지 존재했던 초대륙으로, 현재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호주, 남극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던 시절의 땅덩어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이 말벌들의 조상은 대륙이 분리되기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대륙이 갈라지면서 각지에 고립된 채 살아남은 생물인 셈입니다. 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판게아와 대륙 이동설을 배울 때는 그냥 암기 대상이었는데, 실제로 살아있는 생물이 그 역사를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신종 발견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43년간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표본에서 신종이 확인된 것으로, 분류학 연구의 속도와 적체 규모를 잘 보여줍니다.
  • 종(species) 발견보다 훨씬 드문 새로운 속(genus)이 설립되었습니다.
  • 곤드와나 시대의 유물급 분포를 보이는 아과에 속해 진화생물학적 가치도 높습니다.
  • 기생벌(parasitoid wasp)은 전 세계적으로 약 25,000종이 알려져 있고, 아직 명명되지 않은 종이 약 75,000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남긴 것들,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데이비드 애튼버러 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수목원에 갔다가 처음으로 식충식물을 직접 본 날이 생각납니다. 그 작은 잎 안에서 벌레가 녹아드는 모습을 보며 "이게 진짜 살아있는 거야?"라고 한참 들여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호기심의 출발점에는 분명 어릴 때 봤던 자연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애튼버러처럼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곤충 수석 큐레이터 개빈 브로드 박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애튼버러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보며 자랐고, 그 덕분에 분류학자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고요. 분류학(taxonomy)이란 생물의 형태, 유전자, 행동 등을 기준으로 종을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분야이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분류학자 수가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를 분류학자 부족 현상(taxonomic impediment)이라 부르는데, 이름 붙여지지 않은 종은 법적 보호나 보전 정책의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단순한 학문적 문제를 넘어 생태계 보전과 직결됩니다(출처: 런던 자연사 박물관).

제 경험상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대부분 거창한 강의가 아니라, 눈앞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직접 들여다보는 순간에서 옵니다. 동물원 유리창 앞에서 도마뱀의 눈을 들여다보거나, 수목원 연못에서 물방개가 헤엄치는 걸 따라가 본 경험처럼요. 그런 순간들을 수십 년째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전달해온 사람이 100세를 맞았다는 건, 단순한 장수 뉴스가 아닙니다.

애튼버러의 이름은 이미 물고기, 거미, 새, 도마뱀, 딱정벌레, 달팽이, 해양 식물성 플랑크톤을 포함해 50종이 넘는 동식물에 붙여져 있습니다. 멸종 위기종인 가시두더지 자글로수스 아텐버러기(Zaglossus attenboroughi)도 그중 하나입니다. 종명이 아닌 속명에 이름이 붙은 경우는 더 드물어서, 이번 아텐보로눌루스를 포함해 가봉의 나무 속 시르다비디아(Sirdavidia), 쥐라기 해양 파충류 아텐보로사우루스(Attenborosaurus) 정도가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새로 발견된 말벌 소식을 전해 듣고 브로드 박사에게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써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100세 노인이 손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그가 여전히 자연과 사람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온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이 결국 새로운 생명의 이름 안에 새겨졌다는 것이 저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름조차 모르는 수만 종의 생물들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존재를 밝혀내는 일이 지구를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 뉴스가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 자연을 알아가는 일, 그리고 그 앎을 나누는 일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5/08/science/david-attenborough-new-species-w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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