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몸에서 떨어져 나온 조직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고 느꼈던 수준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해삼의 절단된 조직이 3년 이상 죽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며 영양분까지 흡수했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고, 제가 알고 있던 생명의 기준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렇게 구체적인 데이터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재생 메커니즘 —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것이 깨졌다
불가사리가 팔을 재생하는 장면을 과학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꽤 놀랐는데, 이번 해삼 연구는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단순히 잘린 부위가 다시 자라는 게 아니라, 잘려나간 조각 자체가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의 주인공은 북대서양에 서식하는 프솔루스 파브리치이(Psolus fabricii)라는 해삼 종입니다. 연구팀은 이 해삼의 관족, 몸통, 촉수에서 조직 조각을 절제한 뒤 자연 해수 환경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습니다. 여기서 관족이란 해삼이 이동하거나 표면에 부착할 때 쓰는 흡반 형태의 작은 돌기를 말합니다. 야생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포식자를 만났을 때 스스로 떼어내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연구는 사실 우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조에서 해삼을 꺼낼 때 관족 일부가 유리면에 붙어 남아 있었는데,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그 조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치유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처음엔 오염이나 관찰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실험 환경입니다. 이 조각들은 무균 실험실 환경이 아니라, 연구자 표현대로 박테리아와 미생물이 가득한 자연 해수 속에서 생존했습니다. 자기 절단(autotomy)이란 동물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신체 일부를 끊어내는 행동을 뜻하는데, 도마뱀의 꼬리 절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도마뱀 꼬리는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꼬리 자체가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치유되지는 않죠. 해삼의 경우는 그 잘린 조각이 숲 속을 혼자 기어 다니며 먹이를 찾아 수년간 버티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되었습니다(출처: Science Advances).
세포 생존 —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연구팀이 이 조직 조각들을 "좀비"라고 부른다는 표현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상태. 저는 이 개념이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가 생명을 정의하는 방식 자체를 건드린다고 생각합니다.
절단된 조각들에서 확인된 현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과 소화기관이 없음에도 해수 속 아미노산을 직접 흡수
- 세포 생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면역 반응 신호가 관찰됨
- 분리 후 수개월이 지나도 자극에 반응하고 움직임이 확인됨
- 3년 이상 경과 후에도 세포 사멸(apoptosis), 괴사(necrosis), 분해 징후 없음
여기서 세포 사멸(apoptosis)이란 노화나 손상된 세포가 스스로 죽어 제거되는 정상적인 생리 과정을 뜻합니다. 건강한 생물체에서는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번 해삼 조각에서는 이 과정이 억제되거나 극히 낮게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신체에서 분리되는 순간 빠르게 분해됩니다. 간을 예로 들면, 혈류로부터 영양을 공급받고 면역계의 보호를 받으며 노폐물 처리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 연결이 끊기면 조직은 급격히 기능을 잃습니다. 그런데 해삼의 조직 조각은 그 연결이 끊긴 상태에서도 내부적으로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능력을 유지했습니다. 자기 조직화란 외부 도움 없이 내부 구조를 스스로 유지하거나 재편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말합니다. 플로리다 대학교 휘트니 해양생물과학연구소의 베로니카 힌먼 소장은 이 현상이 "조직이 완전한 유기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정 수준의 생존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출처: 플로리다 대학교 휘트니 해양생물과학연구소).
제가 특히 주목한 건 이 조각들이 완전한 새 개체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생을 넘어서 복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어가는 것도 아닌 상태. 이건 기존의 어떤 생물학적 분류에도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의학 응용 — 이 작은 조각이 바꿀 수 있는 것들
솔직히 처음에는 "해삼 연구가 사람한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의학적 파급력이 상당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현재 세포 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불멸 세포주 중 하나가 헬라 세포(HeLa cell)입니다. 헬라 세포란 1951년 자궁경부암 환자 헨리에타 랙스의 암세포에서 유래한 인간 세포주로, 실험실 환경에서 무한정 증식이 가능한 특성을 갖습니다. 암 연구, 백신 개발, 유전자 연구에 수십 년간 활용되어 왔지만, 두 가지 큰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도로 통제된 무균 환경과 정밀한 배양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환자의 동의 없이 세포를 채취했다는 윤리 문제가 지금까지도 논쟁 중이라는 점입니다.
해삼 조직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테리아가 우글거리는 자연 해수에서도 스스로 생존한다는 사실은 배양 조건에 대한 제약이 훨씬 낮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무척추동물의 조직이기 때문에 인간 세포 사용에 따르는 윤리적 쟁점도 없습니다.
추가로 해양 환경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해수 온도 상승이나 병원균에 대한 세포 반응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바이오센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구상도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응용 연구는 기초 발견 이후 실제 적용까지 시간이 꽤 걸리지만, 이 경우는 출발점 자체가 워낙 독특해서 방향이 다양하게 열릴 것 같습니다.
다음 단계는 이 세포들의 DNA 텔로미어(telomere) 구조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텔로미어란 염색체 말단에 위치한 반복 서열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면서 결국 세포 노화와 사멸을 유도하는 구조입니다. 이 텔로미어가 해삼 조직 조각에서 정상적으로 단축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진정한 불멸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이란 개념이 단순히 "숨 쉬고 움직이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이번 연구가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조각들이 '좀비'라는 별명보다 더 적절한 이름이 붙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텔로미어 분석 결과가 나오면 또 한 번 생명의 정의가 새롭게 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생물 재생 연구나 세포 노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 해삼 연구의 후속 결과를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당장 의학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기초 과학에서 가장 큰 발견은 언제나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5/28/science/sea-cucumber-amputated-tissue-re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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