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저는 공룡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언제나 제 상상 속 최강자였죠. 그런데 최근 기사를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바다에도 "렉스(Rex)"가 있었다는 것, 그것도 육지의 왕과 덩치가 비슷한 해양 최상위 포식자가 실존했다는 사실이 공식 학술지에 발표된 겁니다.
8000만 년 전 내륙해를 지배했던 바다의 왕
솔직히 처음엔 제목이 과장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공식 신종으로 등재된 틸로사우루스 렉스(Tylosaurus rex)는 모사사우루스류(Mosasauridae)에 속하는 거대 해양 파충류입니다. 여기서 모사사우루스류란, 약 9800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 백악기 후반에 걸쳐 전 세계 바다를 누빈 대형 해양 파충류 그룹을 말합니다.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계통입니다.
틸로사우루스 렉스가 살았던 시기는 약 8000만 년 전, 지금의 북미 대륙 한복판이 거대한 내륙해(Western Interior Seaway)로 뒤덮여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서 내륙해란, 대륙 내부가 얕은 바다로 잠겨 형성된 거대한 수역을 뜻합니다. 지금의 텍사스 일대가 그 바다 아래 있었고, 바로 그 지층에서 이 종의 화석이 잇따라 발굴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공룡 이야기는 항상 육지 위 이야기로만 기억에 남더군요. 학교에서도, 박물관에서도 육상 공룡 위주로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바다에서도 이런 포식자가 살았다고?"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알고 보면 같은 시대에 육지와 바다에서 각각 다른 왕이 군림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 연구는 2025년 5월 미국 자연사 박물관 회보(Bulletin of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주 저자인 아멜리아 지틀로우는 캐슬 역사박물관 소속 고생물학자로, 12개 이상의 기관에 분산 보관된 화석들을 직접 비교 분석해 신종 기재에 이르렀습니다(출처: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수십 년 묵은 화석이 뒤집어 놓은 분류 체계
제 경험상, 새로운 종이 발견된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새 화석이 발굴된 장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습니다. 이미 박물관 수장고에 오래 잠들어 있던 화석들이 재분석을 통해 전혀 다른 종으로 판명된 사례입니다.
문제의 출발점은 '비프케이크'라는 별명이 붙은 표본이었습니다. 지틀로우가 2020년 뉴욕 미국 자연사 박물관 소장품을 살펴보다 발견한 이 화석은, 19세기에 텍사스에서 발굴된 것이었는데 덩치가 유독 컸습니다. 이전까지는 틸로사우루스 프로리거(Tylosaurus proriger)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지틀로우의 눈에는 뭔가 달라 보였다고 합니다.
공동 저자인 마이클 J. 폴신은 이미 2012년경부터 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표본이 충분치 않아 새로운 종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죠. 고생물학에서 신종 기재(新種 記載)란, 특정 생물이 기존에 알려진 어떤 종과도 다르다는 사실을 형태학적 증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증명하고 학명을 부여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폴신은 10년이 넘도록 표본을 모아야 했습니다.
지틀로우는 북미와 유럽 전역의 22개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소 12개 화석에서 일관된 패턴을 확인했고, 이것이 새로운 종을 정의하는 모식표본(type specimen)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모식표본이란, 어떤 종을 공식적으로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단 하나의 표본을 말합니다. 이 표본은 현재 댈러스의 페로 자연과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틸로사우루스 렉스의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코끝에서 꼬리까지 평균 몸길이 9~11미터, 최대 두개골 길이 1.7미터 이상
- 톱니 형태의 이빨과 강화된 턱 근육, 두개골의 추가 뼈 주머니를 보유
- 먹이로는 물고기, 거북이, 플레시오사우루스(긴 목을 가진 해양 파충류)가 포함
- 기존 틸로사우루스 프로리거보다 전반적으로 체구가 크고 두개골 구조에서 명확한 차이 존재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아마추어 화석 수집가들의 역할이었습니다. 댈러스 지역의 비전문 고생물학 애호가들이 표본을 발굴해 박물관에 기증한 사례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성과가 반드시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습니다.
공룡 시대, 육지 밖에서도 벌어지고 있던 일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룡 하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육상 생물만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이번 발견은 그 시대를 훨씬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든버러 대학교의 스티브 브루사테 교수는 이 두 "렉스"를 나란히 비교했습니다. 육지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바다의 틸로사우루스 렉스는 각자의 생태계에서 약 12미터에 달하는 몸집을 가진 최상위 포식자였습니다. 같은 시대,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왕이 군림하고 있었던 셈이죠. 브루사테 교수는 틸로사우루스 렉스가 "오늘날 살아있는 어떤 상어 못지않게 무시무시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출처: The University of Edinburgh).
또한 이번 발견은 틸로사우루스 속(屬) 전체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도 바꿔놓습니다. 여기서 속이란, 생물 분류 체계에서 종보다 한 단계 위의 단위로, 공통 특징을 가진 여러 종을 묶는 범주를 말합니다. 기존에는 틸로사우루스가 상대적으로 다양성이 낮은 그룹으로 여겨졌지만, 틸로사우루스 렉스의 추가로 그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가 직접 공룡 다큐멘터리와 책을 찾아보며 쌓아온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뉴스는 단순한 학술 소식 그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페로 자연과학 박물관에 직접 가서 모식표본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발견은 고생물학이 새 땅을 파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학문이 아님을 잘 보여줍니다. 오래된 수장고 서랍 속에서, 수십 년 전 누군가 기증한 화석 하나에서 역사가 다시 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틸로사우루스 렉스를 둘러싼 후속 연구가 어떤 이야기를 더 꺼내놓을지, 저는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가까운 자연사 박물관의 모사사우루스 코너부터 한 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8000만 년 전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5/28/science/tylosaurus-rex-mosasaur-new-spe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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