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엔 심해가 그냥 어둡고 텅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챙겨보면서도 "빛도 없는데 뭐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솔직히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인도양 남동부 디아만티나 단층대에서 수백만 년치 고래 뼈가 층층이 쌓인 무덤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심해는 텅 빈 곳이 아니라, 지구 생명의 역사를 조용히 쌓아온 공간이었습니다.
디아만티나 단층대, 수백만 년의 고래 화석이 쌓인 곳
일반적으로 화석은 땅속에서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번 발견을 보면서 그 상식이 얼마나 육지 중심적인 시각인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호주 남서쪽 해역에 위치한 디아만티나 단층대는 해수면 아래 약 5,600~7,000미터 깊이까지 뻗어 있는 해령과 해구의 복합 지형입니다. 여기서 해령이란 해저에서 솟아오른 산맥 형태의 지형을, 해구는 반대로 깊게 파인 V자형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이 V자형 구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죽거나 죽어가는 고래들이 해류를 타고 이 지점으로 집중되고, 깊은 바닥에 가라앉으면 퇴적물 이동이 거의 없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입니다.
2023년 2월과 3월, 중국 연구선 탄쑤오이하오(Tan Suo Yi Hao)호에 탑재된 잠수정 펜두저(Fendouzhe)가 32차례 잠수를 실시한 결과, 485개의 고래 화석층과 5개의 현생 고래 사체가 확인되었습니다. 약 1,200킬로미터에 걸쳐 분포한 이 화석군은, 일부 구간에서는 제곱킬로미터당 약 760점의 화석 밀도를 기록했습니다. 연구진의 추산으로는 해구 바닥에 1천만 마리가 넘는 고래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출처: Nature).
발견된 화석 대부분은 부리고래(beaked whale)의 것이었습니다. 부리고래란 돌고래처럼 길고 좁은 주둥이를 가진 고래류로, 수심 3,000미터에 가까운 심해 잠수를 하는 종입니다. 워낙 수면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생태 정보가 거의 없는 종이기도 합니다. 그 부리고래 중에서도 이번 탐사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는데, 연구진은 이를 프테로케투스 디아만티나에(Pterocetus diamantinae)라고 명명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화석인 프테로케투스 벵구엘라에(Pterocetus benguelae)는 약 53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멸종된 속과 현존 종이 같은 해저에서 함께 발굴된 사례는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이번 발견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화석 분포 범위: 약 1,200킬로미터에 걸친 연속 분포
- 화석 밀도: 일부 구간 제곱킬로미터당 약 760점, 기존 유사 유적 대비 최고 수준
- 추정 매장 개체 수: 1천만 마리 이상
- 가장 오래된 화석: 프테로케투스 벵구엘라에, 약 530만 년 전
- 신종 명명: 프테로케투스 디아만티나에(이번 탐사에서 최초 발견)

죽은 고래가 만드는 생태계, 심해 생물군집의 실체
저는 다큐멘터리에서 고래 사체가 심해에 가라앉으면 청소동물의 먹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막연히 "큰 물고기들이 먹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알려진 내용은 그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정교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부분은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복잡한 시스템인지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탐사에서 발견된 현생 고래 사체 중 하나에서는 1제곱미터당 최대 2,840마리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이 생물들 중에는 고래 뼈를 직접 분해하는 오세닥스(Osedax)라는 뼈먹이 다모류 벌레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세닥스란 뿌리 모양의 조직을 뼈 속으로 뻗어 지방과 단백질을 흡수하는 특수한 심해 생물로, 위장기관이 없는 대신 공생 박테리아를 통해 영양분을 얻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밖에도 달팽이류, 긴팔불가사리, 화학합성 이매패류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화학합성(chemosynthesis)이란 태양빛이 전혀 닿지 않는 심해에서 황화수소나 메탄 같은 화학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광합성이 불가능한 심해에서도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핵심 원리입니다. 고래 사체가 분해되면서 이러한 화학 에너지원이 흘러나오고, 그것이 주변 생태계 전체를 먹여 살리는 구조입니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 자연과학 연구소의 척추동물 고생물학자 올리비에 람베르는 이번 연구가 부리고래 사체 역시 수염고래처럼 특정 심해 지역에서 생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출처: 브뤼셀 왕립 자연과학 연구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부리고래가 이렇게 집중적으로 한 지점에 쌓이고, 그것이 수백만 년에 걸친 심해 생태계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은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래에 대한 이해를 다시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철망간산화물(ferromanganese oxide)이라는 심해 광물이 뼈 표면에 층을 형성하며 화석화를 촉진한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철망간산화물이란 심해 저층에서 철과 망간이 산화되어 결합된 광물로, 성장 속도가 극히 느려 수백만 년에 걸쳐 뼈를 감싸는 보존층을 형성합니다. 덕분에 이 고래 뼈들이 퇴적물에 묻히지 않고도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직접 탐사 영상을 찾아보면서도, 저 깊이에서 뼈가 그 형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광물 덕분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비로소 납득이 됐습니다.
심해가 단순히 어두운 공간이라는 생각은 이번 발견으로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수백만 년의 시간이 쌓인 고래 무덤은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 수천 마리의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심해 탐사 기술이 발전할수록 디아만티나 단층대처럼 접근조차 어려운 곳에서 어떤 발견이 더 나올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번 연구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 네이처의 원문을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심해 생물과 고래 생태에 관심이 생겼다면, 관련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것도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6/12/science/diamantina-zone-whale-graveyard-discovery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구 최대 전갈 프라에르크투루스 기가스 (화석 재분류, 절지동물, 데본기) (0) | 2026.06.13 |
|---|---|
| 아르테미스 3호 (달 탐사 배경, 승무원 분석, 달 착륙 전망) (1) | 2026.06.12 |
| 철기 시대 장례 의식 (두개골 절개, 매장 풍습, 고고학 연구) (0) | 2026.06.12 |
| 지중해 백상아리 (유령 그물, 혼획, 멸종 위기) (0) | 2026.06.11 |
| 수정구슬 성운 (행성상 성운, 쌍성계, 백색왜성) (0) | 2026.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