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수십 종의 생물이 아프리카 앙골라 동부 고원 한 곳에서 동시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릴 적 곤충 도감을 뒤적이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게 진짜로 지구에 살고 있다고?" 싶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자연은 여전히 그 기분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생물 다양성 사각지대, 리시마 고원
앙골라 고원지대에 자리한 리시마 고원은 콩고, 오카방고, 잠베지, 쿠안자 강 유역의 발원지를 이루는 광활한 지역입니다. 지도 위에서는 그냥 아프리카 한복판 어딘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늪지와 습지, 초원과 삼림이 뒤섞인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 지역이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조사되지 못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접근 자체가 극도로 어려운 지형, 둘째는 2002년에서야 끝난 27년간의 내전입니다. 전쟁이 남긴 지뢰 문제는 지금도 현지 탐사를 제약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접근 불능 상태가 오히려 생태계를 개발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온 셈입니다.
2025년 2월, 남아프리카 탐험가 스티브 보이스가 설립한 더 와일더니스 프로젝트가 '카사이 생태 지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아프리카와 해외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우기가 절정에 달한 최악의 타이밍에 현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탐험대장 롭 테일러에 따르면 호송 차량이 진흙탕에 하루 종일 갇히는 일이 반복되었고, 팀원 일부는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차량이 멈출 때마다 인근 담보(계절적으로 물에 잠기는 초원)와 늪지 숲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악조건을 불편함이 아니라 기회로 바꾸는 태도, 연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인 것 같았습니다.
지난 10월, 습지 보존 기구 람사르(Ramsar)는 리시마 랴 므워노 지역을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람사르 협약이란 1971년에 채택된 국제 환경 협약으로, 습지 생태계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지역의 지하수가 주변 11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입니다(출처: 람사르 협약 사무국).
형광 거미부터 갑옷귀뚜라미까지, 발견된 종들의 면면
이번 탐사에서 기록된 종은 단순히 숫자만으로도 압도적입니다.
- 잠자리·실잠자리 103종 (이 중 8종은 미기재종, 즉 학계에 전혀 보고된 적 없는 종)
- 나방 8종 (신종)
- 메뚜기·여치·귀뚜라미 각 1종씩 (신종)
- 왕관게거미, 무당벌레거미 등 신종 거미류 다수
여기서 미기재종(未記載種)이란 분류학적으로 아직 공식 학명이 부여되지 않은 종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몰랐던 생물"이 아니라, 과학적 기재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학술적 존재로 등록되는 생물입니다.
제가 어릴 적 곤충 도감을 볼 때 가장 신기했던 건, 같은 생김새인데 이름이 다른 종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왜 굳이 이름을 따로 붙이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압니다. 분류학(taxonomy)이란 생물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명명하는 학문인데, 이 이름이 있어야만 보호 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연구도 축적될 수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생물은 법적 보호 대상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이번 발견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자외선(UV) 조사 시 푸른빛을 내는 왕관게거미입니다. 생물 형광(biofluorescence)이란 외부 빛 에너지를 흡수해 다른 파장의 빛으로 재방출하는 현상인데, 왜 이 거미가 이런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는 아직 과학자들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광을 동종 인식에 활용한다는 설, 포식자를 교란한다는 설 등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정된 게 없습니다.
무당벌레거미도 못지않게 흥미롭습니다. 이 거미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당벌레딱정벌레와 체색과 외형이 유사하게 진화했는데, 이를 의태(mimicry)라고 합니다. 의태란 포식자를 속이기 위해 다른 생물의 모습을 모방하는 진화 전략으로, 자연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명을 읽었을 때는 "거미가 무당벌레 코스프레를 한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수백만 년에 걸친 생존 전략이었던 겁니다.
이미 알려진 종 중에도 눈에 띄는 것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독사 중 가장 긴 5cm짜리 송곳니를 가진 가봉살모사, 박쥐의 털 속에서 기생하는 날지 못하는 박쥐파리, 깃털처럼 솜털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진 다깃나방 등입니다. 이런 종들이 같은 고원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지역 생태계의 다층적 복잡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발견 이후, 보호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과 그 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것,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두고 생각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발견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발견 이후의 보호 체계가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단계라고 봅니다.
탐험대장 테일러는 가장 취약한 종은 서식 범위가 극히 좁거나 특정 조건의 서식지에만 의존하는 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잠자리는 광산 개발로 인한 담수 수질 오염에 취약하고, 특정 나비 종은 화전 농업이나 산불로 소멸될 수 있는 기주 식물(host plant)에 의존합니다. 기주 식물이란 특정 곤충이 산란하거나 유충이 먹이로 삼는 특정 식물을 의미하는데, 이 식물 한 종이 사라지면 연쇄적으로 해당 곤충도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더 와일더니스 프로젝트는 협력 단체들과 함께 2025년까지 고원의 540만 헥타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공식 보호구역 지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광산 개발 허가나 토지 이용 결정에서 법적 제동을 걸 수 있는 실질적 수단입니다.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제 협약인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는데, 이번 리시마 고원 지정은 그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유엔환경계획 UNEP).
다큐멘터리로 아프리카 생태계를 접했을 때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이번 기사를 읽으면서는 조금 다른 감각이 생겼습니다. 화면 밖에서, 진흙탕 속에서, 말라리아를 앓으면서도 채집통을 들고 늪을 뒤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수고 없이는 이 생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거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종이 발견될 때마다 분류학자들이 공식 기재를 마치기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테일러 역시 이번 조사 결과를 전부 발표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발견의 흥분이 가시기 전에, 그 시간이 확보되어야 보호도 뒤따를 수 있습니다.
지구 곳곳에는 아직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리시마 고원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단순히 새로운 종의 목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종들이 깃들어 있는 서식지가 온전히 남아 있어야 발견도, 보호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더 와일더니스 프로젝트나 람사르 협약의 활동을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science/new-species-angola-the-wilderness-project-spc-c2e-intl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로마 금반지 발견 (금속탐지, 매장문화재, 고고학) (0) | 2026.06.06 |
|---|---|
| 동물 언어 해독 (생물음향학, AI 분석, 종간 소통) (0) | 2026.06.04 |
| 수면의 질 (일주기 리듬, 청색광, 수면 진화) (1) | 2026.06.03 |
| 블루 오리진 뉴 글렌 폭발 (정지연소, 발사대, 아르테미스) (0) | 2026.06.02 |
| 블루문 (블루문 정의, 마이크로문, 원지점) (1) | 2026.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