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서 배운 내용이 사실은 잘못 알려진 것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요? 저는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나온 설명을 그대로 전달했다가, 나중에 다른 자료를 접하고 나서야 같은 사건도 여러 시각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마지막 앵글로색슨 왕 해럴드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역사적 해석이 실제로는 빅토리아 시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200마일 행군은 허구였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와 대중 매체에서는 해럴드 왕이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 이후 불과 10일 만에 200마일(약 322킬로미터)을 행군하여 헤이스팅스로 향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 서사는 용감하지만 결국 무리한 판단으로 패배한 왕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의 톰 라이선스 교수는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Saxon Chronicle)를 재검토한 결과, 해럴드의 군대가 실제로는 육로가 아닌 함대를 이용해 이동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출처: CNN).
여기서 앵글로색슨 연대기란 당시 성직자들이 고대 영어로 기록한 주요 사건 기록물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의 역사 기록서와 같은 역할을 했던 1차 사료입니다. 라이선스 교수는 연대기에 등장하는 '본국으로 송환되었다(sent home)'는 표현을 분석하면서, 기존 역사가들이 이를 함대가 해산되어 각자의 출발 항구로 돌아갔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본국'이라는 표현은 연대기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해럴드 왕의 본거지인 런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이 주장이 단순한 단어 해석의 차이로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200마일을 10일 만에 행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제가 직접 계산해봤는데, 하루에 약 32킬로미터씩 쉬지 않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게다가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바이킹과의 격전을 치른 직후라면 병사들의 체력 상태를 고려했을 때 더욱 비현실적인 일정입니다. 반면 함대를 이용한 이동이라면 병사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면서도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로리 네이스미스 교수 역시 이 새로운 해석에 동의하며, 당시 영국이 보유했던 대규모 함대가 동해안을 따라 활발히 운용되었다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출처: University of Cambridge). 그는 해럴드가 자신에게 주어진 해상 전력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유능한 지휘관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무모하고 충동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던 해럴드 왕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해석입니다.
전략적 지휘관으로서의 해럴드
라이선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해럴드는 먼저 함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항해하여 1066년 9월 26일 바이킹 지도자 하랄드 하르드라다와 성공적으로 전투를 치렀습니다. 이후 함대를 이끌고 런던으로 돌아와 병력을 재정비한 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과 대결하기 위해 육로로 남쪽 헤이스팅스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해럴드는 윌리엄을 남쪽에서 포위 공격하기 위해 함대를 헤이스팅스로 따로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함대가 도착하기 전인 10월 14일에 전투가 벌어져 전세를 뒤집을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포위 공격(encirclement)이란 적의 후방과 측면을 동시에 차단하여 퇴로를 막는 군사 전술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육지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동시에 바다에서 함대가 후방을 공격하는 협공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전투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역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부분이 바로 '만약'이라는 가정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역사는 결과만 놓고 보면 필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변수와 우연이 작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라이선스 교수는 "사실 동전 던지기와 같았습니다. 그날 윌리엄이 될 수도 있었고, 해럴드가 될 수도 있었죠"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헤이스팅스 전투가 일방적인 패배가 아니라 박빙의 승부였음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그동안 우리가 '용감한 패자'라는 낭만적 이미지에 갇혀 해럴드의 실제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캐슬 대학교의 던컨 라이트 박사는 이번 연구가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 해석이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단편적인 사실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적 정설로 굳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며, 우리가 그러한 전통에 의문을 제기할 때 과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내용을 다루는 책과 영상 자료의 설명이 서로 달라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부터 한 가지 정보만 믿기보다 여러 자료를 비교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참고로 헤이스팅스 전투와 관련된 또 다른 오래된 통념도 최근 반박되고 있습니다. 바로 유명한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에 묘사된 장면으로, 해럴드가 눈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란 11세기 노르만 정복을 기록한 약 70미터 길이의 자수 작품으로, 중세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시각 자료입니다. 하지만 가장 초기 사료들은 해럴드가 네 명의 노르만 기사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태피스트리의 묘사가 실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연구는 역사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수정되는 살아있는 학문임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저는 앞으로 어떤 정보든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왜 이렇게 해석되었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바뀔 때, 비로소 과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라이선스 교수는 3월 24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이는 그가 집필 중인 해럴드 왕의 전기에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3/23/science/battle-hastings-harold-new-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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