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벌의 지능 (통찰력, 문제해결, 동물인지)
본문 바로가기
과학

호박벌의 지능 (통찰력, 문제해결, 동물인지)

by trip.chong 2026. 6. 6.
반응형

훈련 없이 완전히 새로운 도구 조작 과제를 스스로 해결한 동물이 있습니다. 그것도 손톱만큼 작은 뇌를 가진 호박벌 이야기입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벌이 본능 이상의 무언가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뇌에 담긴 통찰력의 배경

일반적으로 곤충은 단순한 자극-반응 회로로만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벌이나 개미를 볼 때면 그냥 프로그램된 기계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꽃에서 꽃으로 날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반복적인 움직임이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동물 행동학(ethology) 연구들은 꽤 오래전부터 다른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여기서 동물 행동학이란 동물이 자연환경에서 보이는 행동 패턴과 그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독일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의 침팬지 실험입니다. 100여 년 전 쾰러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바나나를 매달아 두고, 침팬지 주변에 상자와 막대기를 흩어놓았습니다. 침팬지들은 시행착오 없이 상자를 쌓아 바나나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 실험은 동물이 통찰(insight)을 가질 수 있다는 최초의 과학적 근거로 꼽힙니다.

통찰이란 기존 경험이나 모방 없이 인과관계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 쉽게 말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순간적인 깨달음입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능력을 유인원, 코끼리, 일부 조류처럼 비교적 큰 뇌를 가진 종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 기준에서 호박벌은 애초에 후보조차 아니었습니다.

핵심 실험 — 호박벌이 공을 사다리처럼 사용한 방법

호박벌
호박벌

핀란드 오울루 대학교 연구팀이 2026년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는 그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출처: Science). 실험 설계는 세 단계로 구성되었는데, 각 단계가 굉장히 정교합니다.

이번 실험에서 연구팀이 특히 신경 쓴 개념이 신기공포증(neophobia)입니다. 신기공포증이란 동물이 낯선 물체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회피 반응을 말합니다. 이것이 제거되지 않으면 호박벌이 스티로폼 공을 아예 건드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연구팀은 첫 번째 단계에서 벌들이 공과 파란 꽃 모두에 익숙해지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공이 꽃을 덮고 있는 상황을 줬습니다. 벌들은 공을 밀어내고 꽃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 진짜 통찰력 테스트에서 꽃을 천장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벌들은 공을 구덩이로 굴려서 그 위에 올라타야만 꽃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앞선 두 단계에 모두 노출된 호박벌의 75%가 이 과제를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핵심은 목표 지향적 행동(goal-directed behavior)이라는 개념입니다. 목표 지향적 행동이란 단순 반사나 조건반응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머릿속에 그려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선택하는 행동 방식을 말합니다. 연구팀이 꽃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공을 출발시키는 조건으로 실험을 반복했을 때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벌들은 꽃의 시각적 자극 없이도 기억 속 목표를 향해 공을 정확히 굴렸습니다.

이번 실험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느낀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저도 새 프로그램을 처음 배울 때 설명서 없이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우연히 방법을 찾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시행착오였습니다. 호박벌이 한 것은 달랐습니다. 공을 수단으로, 꽃을 목표로 삼아 단번에 연결한 것이었으니까요.

이번 연구에서 호박벌이 보여준 핵심 능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새로운 물체(공)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능력
  • 목표 위치(꽃)를 보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 위치를 기억하고 행동하는 능력
  • 공을 이동 수단으로 삼는 물체 조작 능력을 처음 노출 후 자발적으로 적용하는 능력

이 연구가 가리키는 방향 — 동물인지의 재정의

런던 퀸 메리 대학교의 감각 및 행동 생태학 교수 라스 치트카는 호박벌의 이번 성과가 쾰러의 침팬지보다도 더 인상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부 침팬지 실험에서는 공을 움직이기 시작할 때 목표물이 보이는 상태였지만, 호박벌은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도 해냈기 때문입니다.

동물 인지(animal cognition)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지능과 뇌 크기 사이의 상관관계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동물 인지란 동물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기억하며, 문제를 푸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호박벌은 이 가정을 흔들었습니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문어, 특정 거미처럼 무척추동물(invertebrate)에 해당하는 종들도 자발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범주에 포함해야 하는지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무척추동물이란 척추뼈가 없는 동물을 통칭하며, 곤충·거미·연체동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출처: 영국 엑서터 대학교 신경행동학 연구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작으면 단순하다"는 인식은 꽤 깊이 박혀 있었거든요. 새로운 기계를 처음 다룰 때 저도 나름의 판단과 추론으로 문제를 풀어가는데, 그 능력이 벌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복잡성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한 가지 유의할 점도 있습니다. 연구팀 자체도 이번 실험 결과가 호박벌이 인간 수준의 추론 능력이나 의식을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도구 사용(tool use)이라는 표현을 이번 연구에서는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도구 사용이란 동물이 외부 물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으로, 동물 행동 연구에서 특히 민감한 정의를 가진 개념입니다. 이 표현 하나가 연구의 해석 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연구팀이 신중하게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번 연구가 저에게 남긴 가장 큰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지능이 없다'고 판단해 온 기준이 과연 객관적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우리는 눈에 보이는 크기와 복잡성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재단해 왔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동물 인지 연구가 더 발전할수록,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경계들이 하나씩 다시 그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열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edition.cnn.com/2026/06/04/science/bumble-bees-insight-problem-solving

반응형

TOP

Designed by 티스토리